북_파일/ 플라톤, 『국가론』, 이병길 역(박영사, 1975)

플라톤은 비록 귀족출신이지만 페리클레스의 민주적 전통에서 교육받았기 때문에 그가 후기에 갖게 된 반민주주의적 생각은 당시 민주주의 체제가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에게 내린 유죄판결의 영향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전부터 그는 민주주의가, 올바른 지식을 갖고 있고 그 지식에 따라 책임감 있게 통치하는 지도자보다는 대중적 인기에 영합하여 타락할 수밖에 없는 지도자를 낳는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소크라테스가 죽은 뒤 플라톤은 메가라로 은신하였다가 곧이어 아테네로 돌아와 기원전 388년경 아카데미아를 설립하였다. 고유한 의미의 철학뿐만 아니라 수학, 천문학, 물리학 등을 연구하는 아카데미아는 유럽 최초의 대학이었던 셈이다. 물론 아카데미아는 단순한 선동가가 아닌 정치적 지도자의 양성이라는 학문의 실용성도 목표로 하여 소위 ‘철학적 국가’의 이상(理想)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단순히 실용적이기만 했던 ‘소피스트적’ 수양이 아니라 ‘학문 자체를 위한 학문’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명실상부 ‘대학’의 이념을 실현했다고 볼 수 있다.

아카데미아에서 플라톤이 행한 강의들은 출판되지 않았고 우리에게 전해지지도 않는다. 반면에 대중을 위해 출간된 36편의 대화편은 거의 전부 전해지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바로 『국가·Politeia』편이다. 소크라테스적 ‘무지’를 특징으로 하여 어떤 결론에도 도달치 못하는 청년기의 작품인 제1권을 제외하고 『국가』편 나머지 아홉 권 모두 플라톤 고유의 사상을 담은 원숙기의 작품들이다.

우선 『국가』편에서는 존재의 위계에 상응하는 지식의 등급론이 완성되었다. 플라톤은 지식의 등급을 대상에 따라 구별하고 있는데, 일반적 의미의 “지식”의 영역을 크게 ‘견해(doxa)’의 영역과 ‘지식(episteme)’의 영역으로 나누고 있다. 또한 『국가』편에는 유명한 ‘동굴의 비유’가 등장한다. 이 비유는 결국 참된 지식의 대상은 감각의 대상이 아니라 지성의 대상으로서 불변적이고 항구적이며 이 때 최고의 인지적 상태(noesis)의 대상은 보편자임을 시사하고 있다.

이와 같은 지식의 등급은 정신적 훈련으로서의 교육의 중요성을 암시하는 것으로, 교육은 다시 정치와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다시 말해 지식 등급의 상승은 단순히 학문적 관심의 영역만이 아니라 삶과 영혼 그리고 국가적 선(善)과 관련이 있다. 인간의 참된 선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진정 선한 삶을 영위하지 못할 것이며, 국가의 참된 선을 실현하지 않는 정치가는 국민을 파멸에 이르게 만든다.

결국 『국가』편이 밝히고자 했던 정의로운 국가란 그 구성원들 각자 나름의 덕이 최대한 발휘되어 조화를 이루는 ‘좋은’ 상태이며, 그것은 각 사물이 가장 그 사물답게 또 각 인간이 가장 그 인간답게 완벽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상태를 이른다. 따라서 국가적 선이 무엇인지를 잘 아는 사람(철학자)의 지도에 따라 각자에게 ‘좋은’ 일들을 하는 국민들이 조화를 이루고 사는 나라가 정의로운 국가인 것이다.

차건희 교수 (철학과·문화철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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