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주요 계간지 봄호를 통해 살펴본 국내 지식계 동향을 살펴본다

3월의 시작과 함께 각종 계간지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봄호라는 특성상 지난 연도를 반성하고 올 한해를 새롭게 그려본다는 야심이 담겨있는 만큼, 이번에 나온 주요 계간지들을 살펴봄으로써 올 한해 지식계의 동향을 조망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러시아의 철학자 콘스탄티노프는 가장 심오하고 내용이 풍부한 지식을 “감성적이고 구체적인 것으로부터 추상적인 것을 거쳐 사고 속에서 구체적인 것을 재구성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그의 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면, 2002년 봄 한국 지식계의 지형도는 꽤 바람직하게 그려진 것에 해당한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계간지들이 다시 현실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를 콘스탄티노프 식으로 말한다면, 그 동안의 지식계가 주로 감성(구체성)에서 추상으로 넘어가는 지점에 머물렀다고 평가되는 데 반해 이번 봄호에서는 그것이 다시 구체적인 것을 재구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음을 의미한다.

『실천문학』은 그 책머리에서, 문학(지식)이 다시 “민중의 구체적인 삶의 실감”과 소통하는 통로로서의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그 전위에 『실천문학』이 설 것임을 표방함으로써 그러한 방향을 구체화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방향의 선회가 급작스러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많은 계간지들이 현재 하나의 현실에 대해 공동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이다.

2002년 현재, 한국 국민의 가장 긴박한 관심사는 역시 부시 미국정부의 반테러전쟁과 그로 인한 한반도의 안보문제다. 따라서 과학이나 종교, 순수예술 등 전문성을 위주로 하는 잡지를 제외한 대부분의 계간지들이 하나같이 이 문제를 특집으로 다룸으로써 그러한 국민적 관심을 반영하고 있다.

『창작과 비평』은 특집 ‘테러 이후의 세계와 한반도’를 마련해 대북 정책에 있어서 냉전시대의 시간표로 회귀하려는 부시 미국 정부를 비판하고, 남과 북의 상호의존적 적대관계를 호혜평등적 평화관계로 바꾸는 것을 우리 시대 최고의 민족사적 과제로 설정하는 한편, 이러한 문제에 대해 동아시아라는 보다 넓은 관점에서 접근하는 글에도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한편 『당대비평』 역시 같은 문제에 대해 논의하되, ‘고삐 풀린 전쟁과 세계화, 그 준비된 길 위에 선택은 있는가’라는 특집의 제목이 암시하듯 주로 미국의 세계화 정책의 본질에 대한 규명과 그에 대한 비판에 중점을 두었다.

즉, 미국의 세계화 정책이란 결국 자국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방편에 지나지 않으며 마찬가지로 그들이 벌이는 전쟁 역시 그러한 세계화와 역할상의 동일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전쟁은 “합법적인 대량 파괴 과정을 통해 새로운 ‘생산’과 ‘소비’의 여지를 창출하는 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강수돌, 「9 11 사태와 세계 자본 : 증오의 행위와 사랑의 행위」).

또한 『실천문학』에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다만, 현 사태가 비단 한반도뿐만 아니라 비서구의 세계 전체가 공통적으로 겪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아랍의 민족문제와 이에 대한 대응을 살피고 있다는 점이 좀 색다르다.

이 밖에도 『황해문화』는 특집 ‘전쟁 없는 21세기를 위하여’를 통해 미국의 외교 정책에 대한 비판에 동참하고 있으며, 『문학과 사회』(특집 ‘폭력의 문화사회학’)와 『비평』(김우창 최장집과의 특집대담)에서 제시하는 내용은 여러모로 위와 같은 문제의식과의 연장선상으로 파악될 수 있다.

이처럼 여러 계간지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부시 미국 정부의 정책에 대한 비판과 한반도 평화방안에 대한 모색을 겸하고 있는 점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작업으로 평가되기에 충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지향적인 비전의 부재는 그 한계로 남는다.

일각에서는 “우리를 살려주고 지켜주었고 앞으로 있을지도 모를 기습공격을 억제할 미국에 신세를 갚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대테러전쟁 개전초기에 전투병력을 파견했어야 했다”(『한국논단』 권두언)는 등의 친미 사대주의적 발언이 일삼아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나, 대세는 역시 미국 비판에 기울어지고 있음을 볼 때 미국의 행보에 대한 대한민국 국민의 불안감은 명백히 실체로서 존재한다고 보여진다.

이때 국민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미래지향적 비전임은 명백하다. 그런 맥락에서, 한반도 상황을 희망적인 것으로 보고 미국의 위협이 “남북간의 자주적 협력과 남한 내부의 제반 개혁을 함께 진행함으로써 분단체제의 근원적 비자주성과 반민주성을 극복하는 차원으로 성숙할 호기”라고 판단하는 백낙청 교수의 말은 “민중의 구체적 삶의 실감”에 한층 더 다가간 발언으로 주목에 값한다.

이와 같은 값진 작업들이 계속 이어진다면 일반인의 지식인에 대한 그 오랜 환멸과 불신을 떨쳐낼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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