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3일 프랑스 지성계를 풍미했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타계하였다(향년 71세). 생전에 그의 사회학 이론이 한국 지성계에 끼친 영향은 이루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지대한 것이었다. 일례로 ‘문학 권력 논쟁’이나 강준만으로 대표되는 ‘인물 비평’ 등지에서 그의 이론이 논리적 준거틀로 종종 인용되고 있음을 들 수 있다.

부르디외 사회학의 특징은, 과거 베버나 맑스가 계급 간의 종적 구분에 치우쳐 있었다면 그는 이를 지양하고 계급 간의 종적 구분과 횡적 구분을 병행하고 있다는 점으로 설명된다. 상-하 계급 간의 생활양식의 차이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계급 안에서도 서로 다른 생활양식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그의 사회학 이론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계급 간의 종적 구분과 횡적 구분이 가능한 이유는 그의 독특한 ‘자본’의 개념에 힘입은 바 크다. 자본을 맑스는 경제적 측면에서 접근하여 정의내리고 있는데 비해 부르디외는 경제자본, 문화자본, 사회자본, 상징자본 등을 통칭하는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경제자본, 문화자본은 계급을 구분하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되는 것이며, 특히 문화자본은 계급 간의 횡적 구분을 가능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된다.

예를 들어 상위 계급에 해당하는 사람의 경우, 학력과 교양은 낮지만 돈이 많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상대적으로 돈의 양은 적지만 높은 학력과 교양을 갖춘 사람도 있다. 이 모두를 상위 계급이라고만 본다면 이들의 사회적 지위를 명확히 인식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부르디외의 사회학은 바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준다.

한편 그에 따르면 사회계급화는 상징적 권력 투쟁을 통해 무의식적이고도 자발적인 행위 속에서 이루어진다. 상징적 권력 투쟁이 일어나는 공간이 곧 ‘장(場, champ)’인데, 이곳에서의 투쟁은 경제적 이해관계를 통한 맑스적 투쟁이 아니라 집단의 사고와 행위가 정당한 것으로 인정받아 제도화, 정당화시키기 위해 벌이는 집단 간의 상징적 투쟁을 말한다. 이때 차별화된 위계 질서는 지배-권력 관계를 생산하며, 이는 아비튀스에 의해 재생산된다.

아비튀스란 사회 구조 내에서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개인의 이해관계가 계급이나 집단으로 통합되어 사회적으로 구성된 인식 및 행위구조체계를 말한다. 그러므로 차별화된 위계 질서 사회는 언제나 존재할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적인 모습이다.

부르디외의 사회적 장에 관한 인지 모델을 보면, 오늘날 우리 사회는 자연스런 생활세계(DOXA)를 중심으로 지배적인 문화(ORTHODOXIE)와 하위문화(HETERODOXIE)가 한 축을 이루고 있고, 또 한 편으로는 개인적 기대와 집단적 사건의 결과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순(PARADOXIE)과 이성의 체계적 착각(ALLODOXIE)이 한 축을 이루고 있는 혼돈의 세계이다. 여기에는 어떤 당위나 이상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지배적인 문화와 하위문화 사이의 상징권력 투쟁만이 있을 뿐이다. 오늘날 한국 지식계에서 자행되고 있는 편가르기식 논쟁은 서로 언성 높여가며 자신의 진실됨을 주장하고 있지만, 그것은 부르디외 식으로 말하면 상징권력 투쟁의 다른 모습일 뿐이다. 부르디외는 타계했지만 그가 한국 지식계에 남긴 교훈은 실로 지대하다.
저작권자 © 서울시립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