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학계에 대한 진단과 처방

지난 2월, 필자는 한 잡지에 한국영화학계의 문제점을 지적한 글을 발표한 적이 있다. 신형식주의로 하길종 감독의 작품을 분석한 한 석사 논문의 적절치 못한 외국 이론 적용과, 이 논문을 베껴쓴 다른 연구자의 학자적 양심을 비판한 글이었다. 당시 필자는 한국영화학계의 문제점이 조금이나마 개선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바람이 얼마나 순진한 생각이었는지 실소를 금치 못한다. 글을 읽은 사람도 몇 되지 않을 뿐더러 읽은 그들조차 글에 대한 평가를 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견을 이렇게 거론하는 것은 한국영화학계의 문제점을 다시 지적하기 위함이다. 주지하다시피, 1999년부터 한국영화계는 제2의 르네상스를 맞고 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르네상스를 이어가고 있는데, 만약 이런 르네상스를 지속하려 한다면, 많은 방법이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정확하고 논리적인 이론적, 미학적, 산업적 연구가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단 르네상스가 아니더라도 영화학도라면 한국영화를 연구하는 것이 도리일 것이다. 그러나 그 연구 과정에서는 많은 문제점들이 발견된다. 먼저, 한국의 학문이 대부분 그런 것처럼, 고질적인 ‘기지촌지식인` 근성을 들 수 있겠다. 영화학이 원래 서양에서 발생한 것이기에, 우리보다 영화에 대해 먼저, 깊이 고민하고 연구한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문제는 서양의 연구를 비판 없이 받아들여 한국영화에 적용시킨다거나, 심지어는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적용시킨다는 데 있다. 유학파가 많은 한국의 영화학계의 문제는 심각하다. 게다가 국내에서 공부한 학자들조차 서양 이론으로 한국영화를 연구하려고 한다. 그런데 이런 현상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한국의 영화연구자들이 외국 이론을 완전히 소화하지 못한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는 것이다.

가령, 영화학계에 유독 거세게 불고있는 페미니즘론을 보면, 몇몇 논자들의 경우 페미니즘의 여러 갈래 가운데 어느 것을 선택·옹호하여 자신의 확고한 입장을 세워 밝히기보다는 단지 자신이 여성이기에, 다시 말해 페미니즘 비평은 남성이 할 수 없는 분야이므로 상대적으로 여성이 학계에 쉽게 인정받을 수 있다는 식의 잘못된 접근법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의 말과 행동이 일치되지 않거나 비평관이 일관되지 않을 때는 참으로 난감하다.

둘째, 이것은 첫째 지적과 깊은 관련이 있는데, 외국 이론만 접하다보니 한국 영화학계가 한국영화 연구나 한국영화 담론 형성에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참으로 부끄러운 얘기지만, 단행본으로 출간된 한국영화 감독론―여러 사람이 한 꼭지씩 쓴 선집은 제외한다―은 단 한 권밖에 없다. 한국영화통사가 마지막으로 출간된 것이 35년 전의 일인데, 그 범위도 60년대 후반까지로 국한되어 있다.

상황이 이러하니 한국영화의 정체성, 북한 영화 등에 대한 연구는 좀처럼 진행되지 않는다. 영화학과는 전국에 30개 이상이 있고, 영화 주간지만해도 4개나 되지만, 정작 본격적인 비평문이나 연구 논문을 싣는 계간지는 하나도 없다. 이런 상태에서 한국영화학이 발전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분명 무리이다.

마지막으로, 개인적으로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인데, 영화학의 발전을 위해서는 학제간 연구를 반드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학은 영화이론을 연구하기도 하지만, 많은 부분 다른 학문과의 연관성 속에서 발전할 ‘수밖에` 없다.

영화의 내러티브는 문학, 매체의 특성은 신문방송학, 산업적 속성은 경영/경제학, 영화 이론은 철학/미학/정신분석학, 영화의 사회적 영향력은 사회학과 연관될 수밖에 없다. 물론 학제간 연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로는 미흡하다.

한국 영화학계는 아직도 걸음마 단계에 있다. 제작 중심으로 진행된 기존의 아카데미 제도가 이런 사태를 초래했다. 분명한 것은 지금 영화학을 활성화시키지 않으면 한국 영화학계의 발전은 영영 불가능한 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그나마 젊은 영화학도들이 한국영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한국영화계의 발전에 있어서 가장 적기일지도 모른다. 진정으로 한국영화학계를 살리려면 영화진흥위원회, 영상자료원에서 한국영화 연구자들을 지원하는 과감한 결단이 또한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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