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학은 카톨릭 교회의 성서해석권에 공격을 가했던 종교개혁 시대에 성서해석과 관련된 이론으로부터 출발해서 해석 일반 이론으로 발전하였다. 쉴라이에르마허는 모든 텍스트에 적용할 수 있는 일반 해석학을 제창하였고, 딜타이는 인문학, 사회과학, 정신과학에서 ‘내적인 삶의 표현`이라고 명명한 객관적인 해석을 위한 원칙을 정립하려 했다.

딜타이는 텍스트 전체 의미는 그 구성 부분들의 의미를 이해하는 과정-해석학적 순환-에서 이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가다머의 해석학 또한 딜타이의 이론을 받아들여 ‘내적인 삶`을 추체험해야 한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새로운 체험은 과거의 이해 방식 및 미래에 대한 예기 방식에 따라 수정된다.

동시에 그 체험은 과거와 미래에 대한 이해의 연관 속에서 해석된다. 가다머는 이런 식의 ‘삶의 철학`은 자기이해가 개인의 시간 구조 내에서 이루어지는 한에서만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가다머에게 있어서 인간의 삶은 어떤 해석 과정을 거쳐 이해될 수 있는가. 이러한 물음과 관련하여, 그는 하이데거의 존재이론을 빌어와 현존재가 스스로를 이해하는 방식은 시간에 의해 제약될 뿐만 아니라 바로 그 시간에 의해 현존재의 자기 해석 가능성을 부여받을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바로 이 지점이 가다머의 해석학 이론이 역사성과 만나는 자리이다. 그러므로 이해는 역사적 상황을 초월할 수 없으며, 이런 이해를 통해 얻은 지식은 언제나 부분적이고 수정 가능한 것이 된다.

해석학에서 다루었던 오랜 논제 중 하나는 원저자의 의도를 파악하고 이를 해석상의 객관적인 기준으로 제시할 수 있느냐 혹은 없느냐의 문제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가다머의 역사적 이해의 지평을 고려한다면, 역사적 사건과 역사 속에서 벌어진 행위의 의미는 언제나 그 의도를 넘어선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즉 행위는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를 낳는 경우를 우리는 쉽게 목격할 수 있다. 또한 역사가들 자신이 역사의 한 부분을 구성하는 한 역사가들은 후대인들에 비해 지엽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텍스트의 객관적인 의미를 원저자의 의도를 중심으로 파악하려 했던 허쉬의 이론과는 달리 가다머는 원저자의 의도를 고려하는 해석학으로부터 멀리 벗어나 있다. 가다머는 허쉬와는 달리 텍스트 의미의 상대성을 독특한 놀이 수행 이론으로 빗대어 설명한다.

놀이를 행하는 놀이행위자는 놀이의 기본 규칙을 엄수해야 하는 제약이 따른다. 그러나 놀이에 놀이행위자가 참여하여 놀이가 수행되는 동안에만 놀이일 수 있다. 놀이는 그 자체 규범적인 권위를 갖지만 동시에 놀이행위자는 놀이에 본질적이다.

여기서 놀이라는 항에 텍스트 혹은 예술작품을 대입해보면, 우리의 이해와 감상을 기다리는 텍스트 혹은 예술작품은 그 자체로 규범적인 권위를 갖지만 동시에 텍스트 혹은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독자 또한 이들에 대해 본질적인 위치에 서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텍스트의 지평과 독자의 지평이 서로 융합될 때 진정한 의미의 해석학적 지평이 열리게 된다.

가다머의 해석학 이론에 기초하여 텍스트의 의미를 논한다면, 그것은 현재, 바로 이 순간에, 독자에게 상대적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가다머의 해석학 이론이 가지고 있는 의의는 바로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허쉬가 그러했듯이 원저자의 의도를 절대시하거나 텍스트 그 자체를 절대시했던 과거의 해석학적 지평에서 벗어나, 가다머는 현재라는 시점을 강조하고 또한 독자의 창조적인 해석 가능성을 개진했다는 점에서 상대성을 기반으로 하는 해석학적 지평을 새로이 열어놓았다.

그는 얼마 전 타계했지만, 그가 남기고 간 새로운 해석학적 지평이야말로 우리가 그의 죽음을 추모하고, 그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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