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이라는 병이 회자되고 있다. 구제역은 소나 돼지 등의 입·발굽 주변에 물집이 생기는 증상이 나타난 뒤 많게는 55%에 달하는 치사율을 보이는 가축의 제1종 법정전염병이다.

거의 전 세계적으로 육류 판매량에 변동을 가져오고, 각국이 가축방역과 세관검사에 촉각을 곤두서게 하여 지구촌에 일대 파란을 일으킨 이 병의 진원지는 영국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은 작년에 있었던 광우병 파동의 진원지이기도 해서 소위 선진국의 방역시스템을 신뢰했을 일반인들은 다른 나라도 아닌 영국에서 왜 전염병들이 창궐하는지 의아심을 갖기도 한다.

지난 27일 <한겨레 신문>의 『해외논단』에 소개된 파리 사회과학대학원 정성배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영국의 구제역 발생원인은 “수익성 최대화 정책에 따라 영국과 유럽연합의 국가들이 가축 예방주사제도를 폐지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상 광우병의 발생원인에 대해서도, 축산업자들이 가축이 먹는 사료의 원료를 절약하기 위해 그 제조방식에서 몇 가지를 변화시켰고, 그 결과로 사료에서 프리온이라는 독성물질이 발생하여 광우병을 낳게 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는 인간생활의 안녕과 자연의 보존을 위해 사용되어야 할 과학기술이 이윤추구라는 맹목적 시장논리에 의해 잠식당한 단적인 예라 할 만하다.

금세기 들어 인류는 게놈 프로젝트 등의 완성과 함께 과거 어느 시기보다도 과학기술이 가져다줄 행복한 미래에 도취되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광우병이나 구제역 파동 등과 같은 인재(人災)에서 볼 수 있듯이 첨단과학은 언제든지 인류전체에 대한 대재앙으로 변모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재앙은 20세기의 원자폭탄이 그랬던 것처럼 단순히 기술의 용도를 달리함으로써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그 심각성이 있다.

파괴목적을 갖지 않은 과학기술이라 할지라도 수익성이라는 자본주의적 가치에 의해 오용됨으로써 현재와 같이 “의도하지 않은” 비극을 낳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은 매우 복합적이고 은밀한 기업과 시장의 관계망 속에 존재한다.

결국 인류는 과학기술의 오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과학자와 정책입안자의 양식에만 호소했던 지난 세기의 사고방식을 뛰어넘을 필요가 있다. 즉 과학발전의 성과를 상품화로 직접 연결시키는 기업들의 행보에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현재로선 기업이 과학기술을 빌어 시장의 확대와 보존에 부응할 수는 있을지언정, 인류와 자연의 안위에 부응한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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