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침체에 의한 실업률이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은 순수학문일 것이다. 순수학문이 실용학문의 토대요, 밑거름이라는 것은 새삼스럽게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자본주의의 발전에 있어서 청교도 사상이 없었더라면 지금보다 더한 물질 만능주의 사회를 만들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만 보더라도 서구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껍데기만 받아들임으로 인해 물질 만능주의인 ‘천민자본주의’로 타락하였다.

단돈 몇 만원으로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일들이 이제는 아침 뉴스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보도되고 있다. 이러한 세상에서 순수학문이 중요한 것은 인간의 정신세계를 이끌어 가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철학자들의 말이 등따습고 배부르니까 실없이 떠드는 소리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에 답해나가는 그들의 노력이 인간 세상을 그나마 동물들의 세상과 구분해주는 노력들이 아닐까.

실로 경제 원칙에 물들어 당장의 이해관계에 눈이 먼 사람들일지라도 그들의 젊은 날에 ‘나’에 대한 고민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인간이 궁극적으로 알고자 하는 사실이 컴퓨터의 회로가 아닌 것을 인정한다면 인문학의 위기를 같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순수학문의 중요성을 인정한 대만의 경우에는 세계적인 연구기관인 ‘중앙연구원’을 설치, 국가적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래서 정부의 정책에 얽매이지 않고 당장의 실적에 개의치 않는 깊이 있는 연구를 할 수 있다. 일본에도 대학의 연구소를 순수학문연구기관으로 육성하여, 순수학문의 연구에만 전념하는 연구교수가 있어 활발한 학문연구를 벌이고 있다. 이러한 정부의 미래를 내다보는 지원 아래서 발전하는 순수학문의 영향으로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근시안적인 교육정책 수립으로 뿌리에 해당하는 순수학문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줄기에 해당하는 실용학문만이 자라나고 있다. 이러한 정부의 정책 시행에 대처하기 위해 국립대의 인문대학의 학과장들이 모이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또한 서울대의 경우에는 실용학문 지원이 주가 되는 국가 정책에 대한 의견서를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하였다.

연세대 문리대 학과장들은 교육부의 대학 개편 방향에 반대하는 모임을 가졌다. 이러한 움직임이 빛을 보기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 결정에 있어서 학문을 경제원칙의 자로 재려는 생각을 바꾸어야 할 것이다. 순수 학문은 그 무엇으로도 가치를 매길 수 없는 학문 그 자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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