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문화센터 강병수 부장(경영 79)

한겨레 문화센터의 강병수 부장(경영 79)은 우리 학교 민주동문회의 회장이다. 민주동문회는 학생운동에 참여했던 시대인의 모임이다.

“민주동문회는 민주화를 위해 온 젊음을 바쳤던 순수한 열정을 유지하면서 재학생의 활동을 지원하고, 아직도 어두운 부분이 많이 있는 우리 사회를 보다 밝고 건강하게 만들어 나가는 데 힘이 되고자 하는 동문들의 모임입니다.”

민주화에 대한 갈망으로 뜨거웠던 80년대, 강병수 부장 또한 시대의 부름으로 역사의 한복판에 서있었다. 87년 1월 두 번째로 구속된 그는 6월 항쟁도 감옥에서 맞아야 했다. 모진 고생 덕에 병도 얻었다.

“박종철 죽고 나서 6월 항쟁에 이르기까지 계속 싸웠죠. 밖에서 싸우는 만큼 감옥 안에서도 엄청나게 싸웠거든요. 단식했다 풀고 단식했다 풀고, 하여간 수도 없이 단식했어요. 그때 속을 버린 것 같아요.”

그의 병명은 위암. 3기였다. 97년 위의 3분의 2를 잘라내는 대수술을 했다. 그러나 그는 침대에 안주하지 못했다. 감옥에서 나와 몸을 추스리지도 않고 제일 먼저 운동현장으로 달려갔을 때처럼, 수술을 마치고도 한겨레문화센터로 곧장 달려간 것이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이었다.

“7,8월 노동자 대투쟁을 지켜보면서 이제 노동자들은 스스로 싸울 수 있는 자생력을 갖췄다는 판단이 들었어요. 그러면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각 운동과 시민들과의 접점을 강화하고 시민들의 생각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일을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했죠. 마침 ‘한겨레신문’창간 소식이 들려왔지요. 아, 신문이라는 매체를 통해 시민들을 교육하고, 운동 진영과의 결합을 이뤄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87년 10월, 그는 인천 지역 ‘한겨레신문’ 후원회를 결성하여 2억 원 가량의 후원금을 모은 것을 필두로 인천지역 주주독자 모임을 만들었고, 부평에 ‘한겨레신문’ 지국을 세워 진보적인 지역문화를 일구어내기 위해 다시 온 힘을 쏟았다.

94년 가을 그는 문화센터 창립 임무를 맡아달라는 ‘한겨레신문’의 제의를 받았다. ‘한겨레신문’에 대한 이해도 깊고, 인천 지역에서 지국 활동을 했고, 운동 경험도 있고, 문화 및 교육 사업에 대한 지향이 분명하다는 그의 장점을 높이 산 것이다.

“시대는 많이 변했습니다. 사회는 다양해지고 대중들의 교육수준도 높아졌습니다. 더 이상 80년대와 같은 당위적 논리로 사회의 변화를 꾀하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정확한 사회 인식과 역사적 감수성을 가지고 대중과 함께 호흡하는 사회운동을 전개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제 새로운 세기의 키워드는 ‘문화’입니다.”

민주 동문회의 모토인 ‘시대와 더불어 민중과 함께’라는 말처럼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한 그의 꿈은 언제나 대중과 함께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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