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거일,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죽음 앞에서』(문학과 지성사, 1996)

<오늘의 대학생들에게 추천할 만한 책>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들은 크게 두 가지 부류로 구분될 수 있다.

첫번째 부류는, 오랜 시간의 검증을 거치는 동안 그 가치가 널리 인정된 인류 문화의 유산을 우리 대학생들이 자신의 소유물로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들이다. 둘째 부류는, 대학생들이 우리 시대의 많은 사람들에게 현실적으로 닥쳐와 있는 문제들의 본질에 대한 인식을 심화시키고 판단과 대처의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 주는 책들이다.

복거일은 『비명을 찾아서』라든가 『캠프 세네카의 기지촌』과 같은 뛰어난 장편소설들을 쓴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또한 우리 시대의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한 적극적인 주장을 담은 시론(時論)들을 쉬지 않고 발표해 온 탁월한 칼럼니스트로서도 각별한 주목을 요하는 존재이다.

그는 자신의 칼럼들이 일정한 분량에 달하면 그것들을 책으로 묶어 내는 데에도 게으르지 않아서, 지금까지 그가 출간한 칼럼집 성격의 저서들만 해도 벌써 여섯 권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칼럼집 성격의 저서들에는 한 가지 약점이 있다. 상당수의 글들이 그때그때의 시사적인 토픽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몇 년만 지나면 금방 낡은 인상을 주게 된다는 점이 그것이다.

하지만 나로서는, 비록 이러한 약점의 존재를 충분히 인식하는 가운데서도, 그의 칼럼집들은 우리 대학생들이 오랫동안 곁에 두고 되풀이해 가며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자유와 합리주의의 가치에 대한 깊은 신념과 이해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오른편에 나설 만한 한국인이 오늘날 거의 없다는 점 때문에 우선 그러하다. 그가 놀랄 만큼 해박한 지식과 예리한 판단력에 기초하여,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는 처방을 거침없이 내놓고 있다는 점 때문에 또한 그러하다. 침착하고 조리정연한 설득의 기술이란 과연 어떤 것인가를 대학생 독자들이 잘 배울 수 있도록 저자 스스로의 시범을 통해 친절히 가르쳐주는 글들이 그의 칼럼집들을 가득 메우고 있다는 점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여러 가지 장점을 가지고 있는 복거일의 칼럼집들 가운데서도 내가 특히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 죽음 앞에서』를 지목하여 우리 학생들에게 추천하는 이유는, 이 책이 그의 다른 칼럼집들과 마찬가지로 위의 여러 장점들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으면서, 또 한편에서는, 그의 칼럼집으로는 각별히 이례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시간의 풍화작용 앞에 유난히 오래 견딜 수 있는 면모를 지니고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 죽음 앞에서』가 이처럼 복거일의 다른 칼럼집들보다 시간과의 싸움에서 특별히 유리한 면모를 지닐 수 있게 된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번째로는, 이 책에 고전적 의미에서의 <수필>에 가까운 글들이 유난히 많이 실렸다는 사정이 있다.

복거일은 일찍이 『오장원의 가을』이라는 시집을 낸 바 있는 시인이기도 하거니와, 그러한 사실을 굳이 상기하지 않더라도, 이 책에 실려 있는 수필류의 글들을 읽어 가노라면, 그 글들을 관류하고 있는 따뜻한 서정성의 아름다움에 어느덧 온몸이 동화되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한 동화의 기쁨은 시간의 흐름에 의하여 쉽사리 퇴색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 점이 중요하다 하더라도, 이 책의 전체적인 성격은 역시 수필집이 아니라 칼럼집으로 규정되어야 한다. 즉 수필류의 글들보다는 칼럼에 속하는 글들이 이 책 속에서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칼럼에 속하는 글들 가운데서도, 그때그때의 시사적인 문제에 즉각적으로 반응한 글들보다는 좀더 장기적인 주제를 다룬 글들이 압도적인 다수를 이루고 있다. 바로 이 점이,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 죽음 앞에서』가 시간과의 싸움에서 특별히 유리한 면모를 가질 수 있도록 만든 두번째의 이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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