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사 어떻게 볼 것인가

최근 네덜란드에서 소극적인 안락사를 합법화한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안락사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신문지상에는 안락사에 대한 기사가 계속해서 실리고 있으며, 안락사에 대한 일반인의 생각은 대체로 소극적인 안락사는 찬성, 적극적인 안락사는 반대하는 쪽인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그러나 거의 모든 안락사에 대한 매스컴의 논의에서는 단지 ‘적극적’, ‘소극적’이라는 모호한 기준만 제시되고 있는데 이것은 일반인들의 안락사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돕지 못하는 것이다. 현재 안락사에 대한 윤리적, 법적 논의는 단지 ‘적극적’ 또는 ‘소극적’인 기준을 넘어서 좀더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또한 일반적인 생각처럼 적극적인 안락사가 반드시 정당화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소극적 안락사(passive euthanasia)는 죽도록 방치하는 것으로서 생명을 연장하는 데 필요한 치료를 보류하는 것을 일컫는다. 이는 어떤 경우에는 이미 자비롭고 적합한 행위방침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죽이는 것(kill)과 죽도록 방치하는 것(allow to die)사이에 도덕적으로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적극적 안락사(active euthanasia) 또한 어떤 상황에서는 받아들여져야 할 것이다. 즉 우리의 목표가 쉽고 고통 없는 죽음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죽음을 선택하였을 때, 우리는 그것이 가능한 최선의 방식으로 이루어지도록 보장해야 한다.

안락사의 사전적 정의는 ‘점잖고 수월한 죽음’이다. 오늘날에는 치유될 수 없는 질병으로 커다란 고통이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그 이상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그러한 사람을 죽이는 것을 의미한다. 안락사의 유형에는 자발적 안락사, 반자발적 안락사 그리고 비자발적 안락사가 있다.
자발적 안락사(voluntary euthanasia)란 죽여지는 사람의 요청에 의해 수행되는 안락사로서 현재 안락사 캠페인의 대부분은 자발적 안락사를 위한 것이다.

반자발적 안락사(involuntary euthanasia)란 자신의 죽음에 동의할 능력이 있으나 동의하지 않은 사람이 죽여졌을 때이다. 비자발적 안락사(non-voluntary euthanasia)란 환자가 삶과 죽음사이의 선택을 이해할 능력이 없을 때의 안락사이다.

인간은 호모사피엔스라는 종족의 구성원이기 때문에 생명이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 인격체의 특징을 갖고 있을 때, 그리고 자신을 일정한 시기에 걸쳐서 존재하는 개별적 존재로 또는 지속적인 정신적 자아로 의식할 때에만 생명에의 권리를 갖는다. 예를 들어 장애를 가진 유아의 안락사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유아가 가지리라고 예상되는 삶의 질이다.

장애로 인해 너무도 비참한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유아를 죽이는 것은 인격체를 죽이는 것과 도덕적으로 동등하지 않다. 그들은 생물학적으로 살아있지만 본질적으로 살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안락사의 근거는 죽는 사람에게 이득이 된다는 점에 있다. 안락사 법제화의 반대자들은 환자에 대한 주변사람들의 압력, 안락사를 가장한 완전한 살인, 그리고 혼란스런 상태에서의 환자의 합리적 결정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나 이러한 물음은 안락사의 윤리적 원칙들에 대한 반론이 아니라 자발적 안락사의 법제화에서의 기술적 애로들이다.

만약 우리가 참으로 자유롭고 합리적으로 죽겠다는 결심을 한다면, 안락사의 주장은 타당하다. 조금 더 산다는 것이 그 밖의 모든 고려사항을 능가하는 최고선과 같은 것은 아니다. 안락사를 법제화하고 자신의 상황을 환자들이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 개인의 자유와 자율성을 보다 더 존중하는 것이 될 것이다.

반자발적인 안락사는 자신의 죽음에 동의할 능력을 가진 사람이 죽기를 선택하지 않는데 행해지는 것이다. ‘죽여지는’ 사람이 살아있는 동안의 고통이 너무 크고 너무 확실해서, 그 사람의 삶이 살 가치가 없을 정도로 나쁠 때, 그를 참혹함에서 구해내기 위해 반자발적 안락사를 정당화하는 것이 가능할까? 우리가 어떤 사람의 삶이 그 사람에게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를 그 사람 자신보다 더 잘 판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안락사의 법제화는 자율성에 대한 존중과 무의미한 고통의 회피라는 목표에 기초해 있다. 그러므로, 안락사는 다음과 같은 경우에만 정당화될 수 있을 것이다.

1. 자신의 계속적인 생존과 죽음간의 선택을 이해할 능력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에, 죽음에 동의할 능력을 결여하고 있는 경우.

2. 자신의 계속적인 삶이나 죽음을 선택할 능력을 가지고 있고 또 관련된 모든 것을 알고서도 자의적으로 그리고 확고하게 죽겠다고 결심하는 경우.

박종준(철학과 대학원 석사 3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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