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자 사상가인 김지하가 90년 5월 소위 ‘분신정국’에서 모 일간지에 기고했던 자신의 글 “죽음의 굿판을 걷어 치워라”에 대해 공개적인 반성을 하고 나섰다.

노태우 정권의 실정에 대한 저항이 극에 달했던 당시, 김지하 시인은 수구언론의 지면을 빌어 대학생들의 분신사태를 자신의 생명사상과 대립시키며, 결과적으로 정치적 개혁의 요구를 ‘자살 특공대’의 광기쯤으로 폄하시키는 데 기여했던 것이다.

얼마 전 박정희 기념관 건립 반대 시위에 참여했던 김 시인은 10년 전 자신의 기고행위에 대한 회한과 반성의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표명했다.

역사의 현장에서 나온 지식인의 글 한편에 이처럼 많은 관심과 책임추궁이 뒤따르게 되는 것은, 지식인이 “스스로 말하지 않는” 민중들의 대변자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중의 역사적 지향과 지식인의 담론이 갈등할 경우, 이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은 시공의 제약을 두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김지하의 예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고은 시인이 자신의 은사이기도 했던 미당 서정주의 과거행적을 비판하고 나선 것 또한, 비판의 내용이 서정주의 작품세계에 대한 것이 아니라, 부정한 정치권력과의 유착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지식인의 현실인식이 얼마만큼 엄정한 책임감과 사명감을 요구하는 지를 알 수 있다.

육체적 생명은 가도 정신과 혼의 생명은 역사적으로 소진되기 이전까지는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혹독한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사회변화의 매 시기마다 지식인들의 언행이 그 변화의 진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체험으로 자각하고 있다. 특히 오늘과 같이 개혁과 수구의 진통 속에서 진정한 변화의 행로를 개척하는 시기에 지식인의 역할은 실로 막대하다 할 수 있다.

우리 대학인도 지식인은 육체적으로 상아탑에 갇혀 있을 수 있으나, 그 정신만은 사회와 현실과 역사와 끊임없이 교감하고 있음을 다시 한번 직시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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