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총학생회(한총련)의 출범식이 다가오면서 수배자들을 자주 만나게 되었다. 그들은 모두 이적 단체인 한총련에 가입한 이유로 국가보안법(국보법) 위반으로 수배된 상태였다.

얼마 전 한총련 출범식과 관련하여 한총련 의장인 최승환 씨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97년도에 부산대에 입학하여 자신의 등록금 마련을 위해 새벽 3시에 배를 타고 나가 밤 10시쯤에 돌아오시는 부모님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등록금 투쟁에 동참했다고 한다.

그 이후로 학생운동을 계속 해오던 최의장은 “집회 도중 전경에게 뒷덜미를 잡힌 채로 개처럼 끌려간 적이 있다. 끌려가지 않으려 몸부림치는 과정에서 전경의 헬멧이 벗겨지고 보니 중학교 동창이었다” 라고 회고하며 가슴아파했다. 친구가 친구를 잡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국보법이다.

작년 김대중 대통령이 방북하여 정상회담을 가진 이후 국보법 폐지의 목소리가 더욱더 커지고 있다. 지난 달 11일에는 20여 명의 연세대 학생들이 서강대교 부근에서 배를 이용해 ‘국가보안법철폐’가 씌어진 깃발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이외에도 곳곳에서 여러 사회단체의 회원들과 대학생들의 국보법 철폐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1년여가 지난 현재에도 찬반 논쟁만이 벌어질 뿐 국보법이 폐지되지 않은 채로 수많은 학생들이 검거되고 있다. 작년 36대 진환 총학생회장도 국보법 위반으로 검거되어 징역 1년 6개월, 집행 유예 2년을 언도받고 풀려났다.

인적자원부는 지난 달 15일 작성한 ‘한총련 운동권 대의원 생활지도 유의사항 통보’라는 제목의 공문에서 각 대학 총학생회의 한총련 탈퇴시한을 5월 29일로 못박은 뒤 “탈퇴하지 않을 경우 수배조치를 내리겠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관련 수배자 명단까지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한총련에서는 지난 달 31일 기자회견을 통해 위와 같은 조치에 대한 유감을 표했다. 또한 오는 5일까지 조치를 취소하지 않을 경우 대대적인 투쟁을 통해 국보법을 철폐시키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지난 시절 국보법 위반으로 사형까지 언도받았던 김대중 대통령은 선거 공약에서 국보법을 철폐시키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국보법의 부당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김대통령이 아직까지 국보법을 철폐하지 못하는 것은 그 자신의 의지 부족 때문이기도 하나, 더 큰 이유는 냉정보수세력(한나라, 자민련, 조·중·통·총)의 반발이 크기 때문이다. 기득권 계층에게 있어 국보법은 자신들의 권리를 빼앗으려 하는 소외된 계층으로부터 가장 손쉽게 자신들을 지켜내는 수단인 것이다.

자신의 의견에 따르지 않는 재야 인사들을 반공 이데올로기로 숙청하던 유신 시대의 잔재가 아직 우리 사회에 엄연히 남아 우리를 옭아맬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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