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학, 남성성, 남성 지배 문화 들여다보기

1990년대 후반을 기억해보자. 김정현의 장편소설 『아버지』(문이당, 1996)가 불러일으킨 파장은 놀랄만한 것이었다.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이후 가속화된 기업구조조정으로 인해 수많은 이들이 직장을 잃었고, 그러한 상황에 직면하여 초라해진 아버지의 위상과 명예퇴직자, 실직자가 된 ‘고개 숙인 남자’들의 고통과 애환이 화두가 되었다.

“낡아빠진 남성다움에서 쉽게 벗어날 수도 없고, 상처뿐인 영광이 낳은 불안에 사로잡혀 살 수만도 없는,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우리네 남성들이다”(정채기, 『남자도 사람이다』, 집현전, 1997)와 같은 불평이 여기저기서 불거져 나왔다. 비단 여성뿐만이 아니라 남성 또한 자본주의와 가부장제 사회의 피해자라는 것. 결국 모든 문제는 구조적인 모순 탓으로 돌려졌다.

다른 한편에서는 여성운동의 지나친 활성화가 오히려 남성을 역차별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이때 남성학은 남성에 대한 자기 성찰로서의 학문으로서가 아니라 여성학의 대항담론으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나타낸다. 한 예로, 한국남성운동협의회는 “진정한 남녀평등을 원한다면 여성도 군대에 가야 한다”는 논리를 펼치며 남녀공동 징병제 헌법소원을 제청한 바 있다. 이는 여성을 대립되는 타자로 인식하는 남성의 무의식적인 구조와 남성으로서의 피해의식이 표출된 예로 지적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그동안의 남성학이 사회 구조의 피해자로서의 남성의 모습을 부각시켰다면, 최근 정유성 교수(서강대 교육학과)가 그의 저서 『따로와 끼리―남성 지배 문화 벗기기』(책세상, 2001)를 통해 제시하고 있는 남성학은 이와는 다른 면모를 지녀 주목을 받고 있다. 우리 사회에 만연된 남성 지배 문화에 대한 그의 비판은 통렬하기까지 하다.

그에게 있어 문제는 사회 구조적 모순이 아니라 남성 자신에게 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지연, 혈연, 학연주의, 남녀차별 등의 문제는 남성 지배의 문화로부터 파생된 것들이다.

그는 남성 지배 문화의 본질을 ‘가름과 나눔’, ‘따로와 끼리’로 명명하면서, “피붙이, 학교붙이, 땅붙이들 ‘끼리’ 남을 따돌리는 ‘따로’ 문화”가 모든 병폐의 근원이라고 주장한다. 즉 ‘따로와 끼리’의 문화를 형성한 남성 중심적 사고 방식은 타자를 끊임없이 배제·억압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회적 불평등이 배태되었던 것이다. 여성은 소유의 대상이 되거나 지배의 대상이 되었고, 남성 중심의 성문화가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이러한 남성성은 생득적인 것인가. 그에 의하면 남성성은 사회적인 구성물이다. 그는 시몬 드 보봐르의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명제를 뒤집어 “남성 다움이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남성은 사회적으로 제조되는 인공물일 뿐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관 주인 프로크루스테스가 침대에 맞춰 손님의 키를 잡아늘이거나 다리를 잘랐던 것처럼, 남성 역시 표준으로 제시되는 남성성을 획득하기 위해 스스로를 억지로 끼워 맞추는 억압의 과정을 겪었던 것이다. 즉 남성들은 사회로부터 끊임없이 남자답기를 강요당하였다. 그리고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려는 남성들은 타인과 스스로와의 관계에서 쉴 새 없이 폭력과 억압의 기제를 끌어들였고, 이것은 남성들 사이에서도 지배와 복종이라는 또 다른 폭력 관계를 낳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논리에 따른다면, 남성은 남성 지배 문화의 또 다른 희생자다.

이에 정유성 교수는 남성 지배 문화의 희생자로서의 남성의 현실뿐만 아니라, ‘남성성’이 지닌 폭력성을 인식하지 못한 채 ‘남성성’에 대한 신화를 여전히 간직하면서 그것에의 강한 향수를 드러내는 현실에 주목한다. 남성의 위기가 뚜렷이 부각된 시기에 역사 속에서 오늘날 찾기 어려운 이방원, 허준, 왕건, 궁예와 같은 남성상을 찾아 위안 받는 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그에 의하면 그와 같은 현상은 남성지배의 문화를 강화시킬 뿐이며 남성 지배 문화의 폐단을 극복하는 데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가 “남성들은 날마다 ‘젠더적’ 의미의 자살을 꾀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 이유에서이다.

그러나 남성 지배 문화에 대한 그의 날카로운 비판에 한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의 논의를 따라가다 보면, 그 동안 대개 남성의 특성이 독립성·의지력·지성·창조·대담성 등으로, 여성의 특징이 종속성·수동성·감성 등으로 표현되었던 것과 다르게, 그가 남성의 특징을 폭력성·공격성·배타성으로, 여성의 특성을 포용성·부드러움 등으로 표현해내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여타의 남성학과 마찬가지로 사회적·문화적 구성물로서의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그의 논의가 여전히 남성/여성이라는 이원적인 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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