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 지킴이 미술가 최병수 씨를 만나

관인화가, 현장미술가, 사회면화가, 바리케이트화가, 현대미술가 100인 중 한 사람, 브리태니커 사전에 나와 있는 사람…….

현장미술가 최병수씨를 가리키는 별명들이다. 어느 별명이 가장 마음에 드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현장미술가라는게 제일 마음에 들어. 난 운동하는 사람이거든”이라고 대답했다.

새만금이라고 알려져 있는 전북 부안군에 위치한 그의 작업장을 찾아갔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공기 좋고 물 맑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그의 작업장에 도착하니 새까만 선글라스에 귀마개를 쓰고 전기톱을 든 그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화가라는 사람이 들고 있는 도구가 전기톱이라는 것에 신기해하자 “지금 솟대 깎는 중이었어. 내일 전시가 있어서 오늘 완성해야 되거든. 작품에 장비를 많이 쓰는 편이야. 전에 안 해본 일이 없어서 웬만한 장비는 다룰 수 있고, 장비써서 작업하면 훨씬 편해지니까”라며 웃어 보였다.

환경·반미·반핵·통일 등 저마다의 의미를 지닌 작품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작업장에서 그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손수 설명해 주었다. 작업장을 나와 그와 함께 간 곳은 창 밖 풍경이 너무나 예쁜 식당이었다. 하지만 그 풍경 너머로 보이는 것은 한참 진행중인 간척사업 현장이었다.

그는 진행중인 간척사업을 자연뿐만 아니라 인간까지 망치는 ‘미친 짓’이라고 서슴없이 말했다. 지난 해 환경연합에서 ‘장승만들기’에 참여해 달라는 연락이 왔었는데 두말 않고 달려왔단다. “94년에 여기에 백합죽을 먹으러 온 적이 있었어. 그 때 맛있게 먹고 있는데 덤프트럭이 먼지를 일으키면서 갯벌을 지나가는 거야. 그 땐 얼마나 화가 나던지 욕을 해댔지. 작년에 나더러 여기 와달라고 하는데 그 때 기억이 났어. 작업하는 참에 작업장도 이리로 옮긴 거지”라며 새만금에 살게 된 이유를 말해주었다.

그가 새만금 갯벌에 세워 놓은 장승과 솟대들은 여느 곳에서 볼 수 있는 그것들과는 다르다. 장승에는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대신 ‘바다대장군’, ‘바다여장군’이라고 쓰여있고, 솟대 꼭대기에는 오리나 백조대신 갯지렁이와 게 등이 꽂혀 있다. 원래 그 땅의 주인인 갯지렁이와 게 등을 올려 우리가 얼마나 잘못하고 있는지를 말하고 그들에게 사죄하려고 그렇게 구상했다고 한다. 솟대를 만든 지 일년이 지난 지금, 그의 솟대는 환경친구로 뉴질랜드에 갈 만큼 유명하게 되었다.

그가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90년대 초이다. 남들보다 빨리 관심을 가졌던 그는 그때의 자신을 ‘왕따’라고 표현했다. 88년 원진레이온 사람들이 공장에서 나오는 유독가스를 마시면서 임금투쟁을 하는데 기가 막혔다며 사람들에게 환경에 대해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막노동을 했던 자신에게 몸은 하나밖에 없는 재산이었기에 몸을 망치면서 임금투쟁을 하는 그들이 이해가 안 갔다는 것이다. “몸은 기본이야. 먹고살자고 하는 짓에 몸 버리면서 뭐하러 해. 내가 환경운동 하는 것도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야.

먹고 사는게 뭔데. 건강하게 사는 거잖아. 자연이 우리에게 바탕인데 바탕이 더러우면 건강할 수가 없어. 그래서 깨끗한 자연을 만들자고 내가 이렇게 솟대도 만들고 그림도 그리고 하는 거야.” 식사 가운데 창 밖의 간척현장을 보면서 말한 그의 환경철학이다. “시간상으로 보면 지구가 생기고 자연이 생기고 인간이 생겼으니 자연이 우리의 형님이지. 그런데 형에게 이렇게 못되게 구는 동생이 어딨어”라고 인간의 자연 파괴에 대하여 명쾌하게 말했다.

그는 환경의식이라는 것은 전인적 의식이고 그것은 또한 주인의식이라고 했다. 자신의 그림 <쓰레기들>을 보여주며 이제는 쓰레기 더미에 놓여있는 지구를 다시 구해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인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이렇게 바보 같은 일은 하지 않는다며, 진정한 주인의식을 가지고 넓게 바라보고 행동하면 환경문제나 일련의 어리석은 일들이 해결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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