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라는 인간에 대해 생각해 본다. 젊어서 그는 방탕한 사람이었지만, 그래서 아버지 조지 부시의 속을 어지간히도 태웠지만, 개과천선한 그는 결국 세계 최강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다. 마치 한편의 <인간극장>이나 <성공시대>를 보는 듯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미국이라는 나라를 지탱하고 있는 세력을 읽게 되어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

부시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자신의 아버지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아버지 노하우가 아들에게 그대로 전수된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아버지 참모들이 아들 참모로 고스란히 이동했다. 권력에서 권력으로 이어지는 미국의 체제는 이제 아버지의 권력을 아들이 직접 ‘승계’하는 노골적 단계로까지 발전했다. 아버지가 주석이었기 때문에 아들이 주석이 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고도의 자본주의 사회나 유일한 사회주의 체제에서나 권력 승계 방식은 어쩌면 이리도 같은지.

대통령 선거 당시 개표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던 부시는 대통령이 되자마자 강력한 힘의 논리로,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지구촌을 건설하려 했다. 보수적인 공화당을 증명이라도 하듯 자기들의 시각으로 다른 여러 나라들을 분류했는데, 조금이라도 미심쩍은 부분이 있는 나라에는 곧바로 제재를 가했다. 한 마디로 거칠 것이 없었다.

이런 와중에 부시에게 고난이 닥쳤다. 미국 번영의 상징인 세계무역센터가 테러에 의해 무너진 것이다. 부시는 곧바로 전쟁을 선포했다. 무고한 시민들이 죽어간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부시가 미 국민들에게, 이때까지 한번도 당한 적이 없는 미 본토가 테러에 의해 아수라장이 된 것에 대해 한 마디의 사과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최고 지도자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것이다. 대신 그는 미국의 오랜 적이었던 이슬람의 테러범을 범인으로 지목하면서 세계 각국의 ‘강압적’ 동의를 이끄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신속하게 군사를 배치하기 시작했다. 세계 최고의 방위체제를 자랑하는, 세계 최고의 정보망을 가진 미국이 한꺼번에 네 대의 비행기에 의해 폭격당했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지만, 사건이 나자마자 범인을 지목하는 것은 더욱 놀랍고, 아무런 실증 없이 군사 행동을 하려는 것에는 차마 말이 나오지 않는다.

나는 테러는 응당코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테러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음도 기꺼이 인정한다. 테러는 절대적 강자의 폭압에 맞선 절대적 약자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기 때문이다. 만약 모든 테러가 나쁘다면, 이봉창도 윤봉길도 한낱 테러범에 지나지 않으며, 이들을 사주한 백범 김구는 테러수괴로 기록되어야 한다.

더 이상 맞수가 없는 절대 강자 미국에 왜 테러가 일어났는지 부시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힘의 논리에 입각한 밀어부치기식 외교는 ‘정상적인’ 외교가 아니다. 자국의 시민이 무고하게 죽는 것이 가슴 아프다면 다른 나라의 시민들이 무고하게 죽는 것에도 진실로 가슴 아파해야 한다. 테러에 전쟁으로 맞선다면 이는 얼마나 불합리한가. 아버지의 보호 아래 최고의 코스를 밟아온 부시가 진정으로 시민들의 고통을 알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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