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의미인줄은 몰랐습니다. 그 말씀이 그렇게 큰 수술을 받으셔야 된다는 의미인 줄은…. 올 겨울이 지나면 건강해질 테니까 연구도 더 많이 하고, 학회활동도 열심히 하자던 말씀의 의미를….

너무도 초췌해지는 모습에 안타까워하는 제자를 안심시키시면서 내년 동남아에서 개최되는 국제학술회의에 같이 참석하자고 하셨는데…. 이제는 사랑하는 선생님을 하늘나라에서나 만나 뵐 수 있게 되었다니. 어쩌면 준비할 수 있는 짧은 시간조차 주지 않고 그렇게 데려가셨는지. 금방이라도 “이박사! 나야!”라고 하면서 전화해올 것만 같은데….

선생님! 정말 정말 사랑하는 우리 선생님! 그렇게 많이 편찮으셨더라면 한해 정도는 쉬셨으면 좋았을 것을. 어떻게 그렇게 편찮으신 몸으로 그 많은 일들을 감당하셨는지. 범인들은 아직도 단꿈에 젖어 있을 시간에 이미 학교 외부 회의를 마치시고, 이른 아침부터 연구에 열중하시던 선생님. 하루 중 오전은 남들이 하루를 살 듯이 정열적으로 살고, 오후는 하루를 더 살 듯이 열심히 살라시던 선생님.

연구실은 학문의 도장이라고 강조하시면서 사자가 새끼를 키우듯이 제자들을 엄하게 담금질하시던 선생님. 호된 꾸지람을 받은 제자가 안쓰러워 되돌아서서는 또 위로해 주시던 선생님. 제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가면서 새벽마다 하나님께 기도 드리시던 선생님. 연구실 밖에서는 제자들 칭찬에 끝이 없으시던 선생님. 이제는 선생님의 이런 모습을 뵐 수 없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가슴이 저밉니다.

선생님! 그러나 저희는 마냥 슬퍼하고만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몸소 보여주신 열정과 헌신이 우리들을 통해서 나타나도록 할 것입니다. 비록 선생님의 빈자리가 너무 크고 우리가 감당하기에는 벅차지만 ‘무엇 때문에 하지 못했다고 하지 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냈다’라고 할 수 있도록 열심을 다하라는 선생님 말씀을 가슴속에 담고 살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 선생님의 가르침이 오늘의 나를 있게 할 수 있었다고 고백할 수 있도록 시간을 아끼면서 살 것입니다.

선생님! 오늘 새벽에 마무리짓지 못하고 떠나신 일들을 처리하기 위해 연구실에 들렀습니다. 선생님과 제가 공동 저자로서 Journal of Applied Polymer Science에 투고했던 논문에 대한 심사의견과 수정 후에 논문으로 실릴 것이라는 편지가 와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 계셨더라면 매우 기뻐하셨을 텐데. 수정사항 및 심사위원에 대한 Defense 사항을 작성하여 발송할 수 있도록 준비해 두고, 연구실을 둘러보았습니다. 어디 한군데 선생님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는데…. 이제 365일 24시간 내내 불이 꺼지지 않았던 연구실이 조만간 문을 닫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님과 저희들의 땀과 눈물과 수고가 함께 배어있는 고분자 연구실은 항상 저희 가슴속에서 살아있을 것입니다.

선생님! 하늘나라는 따뜻하지요.

이재영(화학공학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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