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패권주의 정책을 진단한다

무고한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무차별적으로 자행되는 테러는 반인륜적인 행위로서 어떤 명분에서건 정당화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행동 역시 그 어디에서도 명분을 찾을 수 없다.

부시가 ‘21세기의 첫 전쟁’이라고 선포하고 나섰지만, 이것이 무슨 전쟁인가. 상대가 되어야 전쟁도 되는 것이다. 이것은 문명충돌도 아니고 종교전쟁도 아니다. 그들은 그럴만한 힘도 없고, 어쩌면 보복의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 어린이와 노인들을 포함해 많은 무고한 민간인들의 희생이 뻔한 군사행동은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 이것은 또 다른 테러일 뿐이다.

또한 오사마 빈 라덴에게 은신처를 제공했다는 이유만으로 주권국가가 초토화되는 군사적 보복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강대국의 오만과 횡포에 불과하다.

이번 테러사건은 어떤 면에서 미국의 오만과 편견이 불러온 화이다. 일방주의적인 ‘힘의 외교’에 대한 반발이다. ‘힘의 외교’를 강조하는 부시 대통령의 등장 이후, 미국의 자국중심적인 강경정책에 대한 국제적 반발이 확산돼 왔기 때문이다. 미국의 안하무인식 행동과 패권주의적 정책은 세계 도처에서 갈등과 충돌을 빚어왔다.

테러참사의 가장 큰 희생자는 월드트레이드센터에서 죽은 미국의 무고한 시민들이다. 영문도 모르고 졸지에 전쟁의 참화에 휩싸일 아프가니스탄의 민간인들은 또 다른 희생자가 될 것이다. 반면 최대 수혜자는 미국의 권력 핵심부와 군수산업체가 될 전망이다. 힘에 의한 강한 미국을 주장해오던 매파들은 더욱 힘을 받게 생겼다. 부시 대통령의 지지도는 아버지 부시의 기록을 깨고 사상 최고치인 90%를 넘어서고 있다.

부시행정부의 대외정책은 매우 철저하고도 일관되게 두 가지 목적을 지니고 있다. 하나는 탈냉전 후 유일한 초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 미국은 21세기에도 세계 유일의 패권국가로 남겠다는 정치 군사적 오만과 야망이다. ‘팍스 아메리카나’에 대한 강한 의지이다. 다른 하나는 공화당의 자금줄이자 지지기반인 군수산업체들의 이익을 철저하게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군수산업체를 위해서 무기수요를 창출하려는 의도가 곳곳에서 보인다. MD계획도 그 일환이다.

이번 테러사건으로 군수산업체들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 제2의 걸프전 특수를 맞게 생겼기 때문이다. 테러사건 이후 전세계 주식이 폭락했고, 뉴욕증시도 17일에 재개장 되자마자 폭락세를 보였다. 그러나 군수산업체들의 주가는 일제히 급등했다. 패트리어트 미사일과 토마호크 미사일을 만드는 레이시언의 주가는 무려 27%가 급등했고, 록히드마틴과 노스럽글루먼의 주가도 각각 15%와 16%가 급등했다. 미국 정부는 군수산업체에 무기 생산 속도를 높이라고 독려하고 나섰다. 상원은 삭감되었던 13억달러에 달하는 MD 관련예산을 다시 부활시켰다.

군수산업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미국경제도 결국 상승곡선을 타는 계기를 맞을 것이라는 소리도 들린다. 장기적으로 이번 테러사건은 경기진작책으로 작용해 미국경제의 회복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어차피 미국경제는 전쟁을 먹고 자랐다. 미국을 오늘의 초강대국으로 만든 원동력은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치른 후 미국경제의 규모는 2.2배나 커졌다. 침체기에 빠진 미국의 경제를 살린 것은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이다. 냉전체제 붕괴로 돌파구를 찾지 못하던 미국 경제는 걸프전으로 상승곡선을 탈 기회를 잡았고, 군수산업체들은 재고 처리를 끝낼 수 있었다. 테러사건을 빌미로한 군사보복행동으로 군수산업체들은 다시 한 번 대박을 터트리게 생겼다.

걸프전 때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군수산업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전세계국가들을 대상으로 수금이 시작될 모양이다.

미국의 이번 군사행동은 빈 라덴의 제거에만 있지 않다. 그것은 하나의 구실에 불과하다. 빈 라덴이 제거되어도 군사행동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힌 럼스펠드 국방장관의 발언에서도 미국의 의도가 엿보인다. 일단은 탈레반 정권을 뒤엎고 아프가니스탄에 친미정권을 세우는 것이 목표이다. 미국이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허수아비정권을 세우는 것이다.

현재 미국은 반테레반 무장투쟁을 하고 있는 ‘북부동맹’과 이태리에 망명중인 자히르 전 국왕을 놓고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이러한 의도는 미국이 추구하고 있는 세계 패권주의전략과 연관이 있다. 아프가니스탄은 미국으로서는 군침이 도는 전략적 지역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 인도와 아랍국가까지도 동시에 견제할 수 있는 중앙아시아의 전략요충지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참에 감히 미국에 순응하지 않고 있는 이라크와 이란, 리비아 등도 손 좀 봐주려 할지 모른다.

미국이 ‘세계의 경찰’을 자처한다면 최소한 국제법의 원칙은 지켜야 한다. 유엔체제하에서 무력사용이 허용되는 것은 단 두가지 경우뿐이다. [유엔헌장] 제42조에 따라, 안전보장이사회의 승인을 받아 무력제재를 가하는 경우이다.

또 하나는 [유엔헌장] 제51조에 규정한 자위권에 따른 무력사용이다. 이 경우도 안전보장이사회가 필요한 조치를 취하기 전까지의 긴박한 상황에만 적용된다. 따라서 미국의 군사 행동은 어떤 경우에도 해당되지 않으며, 어디에서도 그 정당성을 찾을 수 없다. 미국의 군사행동은 [유엔헌장] 상으로는 엄연한 침략행위이다. 이미 미국은 유엔조차 무시해 왔다. 코소보에서도 그랬다. 이제 유엔조차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된 것이다.

비록 이번 미국의 군사작전이 성공한다 하더라도 미국은 진정한 승리자가 될 수 없다. 보복은 또 다른 보복을 낳고, 피는 피를 부를 뿐이다. 이슬람국가들의 증오는 더욱 불타 오르고 반미주의는 더욱 확산될 것이다. 오사마 빈 라덴으로 그치지 않는다. 자살테러를 자원하는 젊은 회교도들이 줄지어 설 것이다.

세계평화를 억누르는 짙은 먹구름이 끼어 있다. 평화는 힘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세계평화와 인류의 화해를 위한 걸음은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대외정책을 구사해온 미국의 자성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미국이 패권주의적 정책을 버리고, 세계와 함께 하는 방향에서 국가정책을 수정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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