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위원장의 답방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열릴 예정이었던 남북 장관급 회담이 북한측의 갑작스런 불참의사 표명으로 무기한 연기되었다. 지난해부터 극적으로 무르익어 온 남북간의 화해무드가 뜻밖의 복병을 만난 것 같아 국민들은 안타까운 심정이다. 이러한 상황의 배경에 어떤 요인이 자리잡고 있는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기왕에 터진 민족화합의 물꼬가 근시안적인 국가보호주의 정책으로 인해 다시 막히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현 정부의 햇볕정책에 딴죽을 걸어온 극우·냉전주의자들은 북한에 대한 소위‘주적 개념’을 고수하며 끊임없이 신중론을 제기해 왔다. 북한의 대남 적화정책에 실질적인 변화가 없는 한 남북관계의 개선은 결국 북의 전략전술에 말려들어 가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라는 것이다.

이는 이미 반세기 동안 우리 사회를 지배해 왔던 집단적인 레드 콤플렉스와 부합하면서, 남북화해 정책이 난항을 겪을 때마다 보수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수구적 정치인들의 정치공세에 이용되고 있다. 이번 장관급 회담의 무산도 사안 자체의 성격보다 이것이 수구세력의 냉전논리에 설득력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여진다.

이와 더불어 최근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드러난 바, 미국 공화당 정부의 대북정책이 기본적으로 북한을 테러국으로 규정한 고전적인 강경노선임을 감안할 때, 한반도에 짙게 드리운 냉전논리는 아직까지도 남북화해에 실질적인 장애요인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한다.

남북한은 이미 남북합의서 등을 통해 휴전 이후 양측의 관계개선을 억눌러 온 냉전논리로부터 자유로워야 함을 재차 확인한 바 있다. 더불어 한(韓)민족에게는 다른 어떤 국제적 이해관계보다도 민족의 문제가 우선함을 천명하기도 했다.

즉 현재까지 남북관계 개선의 실질적인 성과라 한다면 바로 냉전적, 파시즘적 논리를 전민족의 합의하에 공식적으로 용도폐기 시켰다는 점일 것이다. 따라서 현재 보수정객들과 보수언론, 그리고 미국의 부시행정부를 중심으로 다시 유포되고 있는 수구·냉전논리는 이미 달성된 성과를 극복해야 할 문제로 되돌려 놓는 시대착오에 다름 아니다.

우리는 대북관계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는 데 있어, 이와 같은 냉전의 유산들이 아직까지 위세를 떨치는 것에 우려를 표명하고, 미래지향적인 견지에서 수구적 이념들이 하루 빨리 극복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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