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아침 출근길에 마주친 일이다. 사회과학관 앞에 있는 나무에 탐스런 열매가 맺혀 가고 있었다. 그런데 학교 뒷산에서 방금 운동을 마치고 내려온 것으로 보이는 4, 50대의 한 남자 분이 그 나무 위에 올라가서 열심히 가지를 흔들고 있었고, 같은 연배의 아저씨와 아주머니 몇 분이 모두 즐거운 듯이 소리를 지르며 떨어지는 열매를 줍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을 제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연구실로 향해가던 내가 그들을 나무라는 동안 나는 주변 사람들의 눈동자 속에서 비슷한 표정이 나타난다는 인상을 받았다. 하나는 열매를 따던 사람들의 눈초리로 ‘당신이 이 학교 주인이냐?’는 듯한 것이었고, 또 하나는 마치 자동차 접촉사고가 나서 다투는 사람들을 호기심에서 쳐다보는 듯한 우리 학생들의 눈초리였다.

과연 우리학교의 주인은 누구인가? 나는 이런 일들을 보면 언제나 이런 질문을 던져본다. 물론 가끔은 이런 것을 제지하고 주인 행세(?)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이런 현장을 마주치면, 애써 눈길을 돌려버린다.
왜 우리학교를 드나드는 사람들은 우리의 아름다운 교정을 이렇게 마음대로 훼손하는 것일까? 그들의 공중도덕심이 낮기 때문일까? 그렇게 보면 마음이 편하겠지만, 무조건 그렇게 판단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면 왜 그럴까? 그 이유는 바로 우리에게 있다. 날씨가 따뜻한 저녁때면 교정 이곳저곳에 학생들의 술잔치가 벌어지고, 애써 가꾸어 논 잔디밭 여기저기에는 종이컵을 차거나 공을 차고 야구를 하는 학생들이 낸 생채기들이 흩어져있다.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아름다운 교정을 학대하고 훼손시키고 있기 때문에 남들은 단지 흉내를 내보았을 뿐이다.

우리가 올바른 주인의식을 갖지 않는 공간은 물리적 공간에만 한정된 것은 아닌 것 같다. 우리의 정신적인 공간에서도 상당히 비슷한 현상을 종종 볼 수 있다. 과거 1980년대 초반까지 우리대학은 전후기로 분할 모집하는 입시체제에서 후기에 속해 있었다. 그 당시 상당수의 입학생들은 전기의 다른 명문대학에 지원했다가 고배를 마신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패배의식이 우리학생들에게 박혀있다는 판단아래 우리대학의 입시를 전기로 바꾸는 일이 이루어졌다.

그러면 그 결과 우리대학 구성원들의 의식이 획기적으로 바뀌어졌는가? 그 평가를 당장 내릴 수는 없지만, 입시제도가 완전히 달라진 지금의 상황에서도 우리의 의식은 그렇게 많이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사립 명문대 정도는 갈 수 있지만, 비싼 학비 때문에 우리대학에 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많기 때문이다. 이런 정신적 패배의식은 우리를 우리학교의 참된 주인이 되지 못하게 한다.

어렵게 입학한 우리대학의 인재들이 자신을 상실하는 한 우리대학의 발전은 실로 요원하다. 대학의 발전은 공간적·외향적 발전만이 전부는 아니라 학생들의 지적 성취와 교수의 교육과 연구의 질에 있기 때문이다. 세상은 이제 우리에게 우리 안팎의 참된 주인이 되길 요구하고 있다. 이 험한 경쟁사회에서 우리가 확고한 주체의식을 바탕으로 우리의 주인이 되어 학교를 사랑하고 학업에 열중하지 않고 마냥 남처럼 행동하고 살아간다면, ‘서울시립대학교’라는 배를 누가 ‘명문대학’이라는 목적지까지 인도해줄 것인가?

임종성 교수(영어영문/형태론, 의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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