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규(경영 64)

지독히도 가난했던 학창시절을 회고하면서 이해규(경영 64, 총동창회 부회장, 송암시스콤 대표이사)씨는 쑥스럽게 말했다. 이대표는 서울시립대동문장학회 설립에 상당액을 기부하고도, 성적은 우수하지만 규정 때문에 장학금을 받지 못하게 된 두 명의 학생에게 사비로 선뜻 장학금을 희사하였다.

“서울시립대학교의 기숙사와 장학금이 아니었다면 대학생활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겁니다. 내게 대학생활의 기회와 기업경영에 필요한 기본 지식을 제공해 준 모교에 늘 감사합니다.” 고무신 한 켤레로 온 교정을 씩씩하게 누비던 그의 별명은 ‘TRY’.

무슨 일이든 지치지도 않고 될 때까지 시도하고 또 시도하는 집요함에서 나온 별명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어도 배움의 길을 포기하지 않고 대학까지 졸업한 뒤, 연간 매출액이 220억을 넘는 건실한 기업(송암 시스콤(주))의 대표이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이대표의 그 ‘TRY’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마터면 시립대의 졸업생이 될 수 없을 뻔했던 옛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하다. “대학교 4학년 1학기까지 장학금을 받아서 무사히 다녔는데 4학년 2학기에 장학금을 받을 수 없게 되었죠. 평점은 장학금 수혜 기준을 충분히 넘어서는데, 한 과목에 D 학점을 받은 겁니다. 당시 규정으로는 한과목이라도 D 이하가 있으면 장학금을 받을 수 없었지요.”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답안지에 D 학점이 주어진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한 이대표. 그래서 교수님들에게 장학생 선발 재심사를 해달라고 여러 차례 부탁했다.

하지만 결과는 아쉽게도 탈락이었다. 장학금을 받지 못하면 학교를 그만 두어야만 하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 이대표는 좌절했다. “대체 규정과 규제가 무엇이기에 이토록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지 않는 건지 많은 회의를 느꼈습니다.” 이번에 이대표가 학생들에게 기꺼이 도움을 준 것도 그때 느꼈던 절박함이 떠올랐기 때문이라 했다.

다행히 이대표의 딱한 사정을 듣고 당시 총여학생회의 여학생들이 자신의 손가락에 끼고 있던 반지를 빼 모아서 간신히 등록금을 마련했고 그는 무사히 학교를 졸업할 수 있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이번에 이대표로부터 장학금을 받은 두 명의 학생은 모두 여학생이다. “일부러 여학생만 주려고 한 것도 아니었는데 저도 뜻밖이었습니다. 아마도 학창시절에 여학생들로부터 입었던 은혜를 지금 갚으라는 신의 뜻인 것 같습니다. 이 학생들 또한 제게서 받은 장학금을 훗날 후배들에게 다시 베풀어주기를 바랍니다.”

이대표는 주위의 환경 때문에 좌절하고 있을지 모르는 후배들에게 말했다. “환경이 어려운 건 오히려 나를 더욱 강하고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비젼을 가지고 치열하게 노력하세요. 꿈을 이룰 때까지 시도하고 시도하고 또 시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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