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문을 들어서면 먼저 익숙한 글씨체의 대자보 대열이 보인다. 대부분이 총학생회나 총여학생회 등의 대자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최근엔 특히 굵직한 학내 사안이 여럿 있었던 터라 발걸음을 멈춰 찬찬히 훑어보는 학생들이 많이 보인다.

학생들이 여러 학내 문제나 학생 집단의 입장 등을 듣고 수용하는 통로로는 대자보의 역할이 크고 그 외에는 학교신문이나 홈페이지, 방송 등이 있겠다. 물론 학생들끼리 얘기하면서 알아 가는 것들이 가장 많겠다.

하지만 정작 일반 학생들의 의사는 어떻게 소통되고 학교에 수용되고 있는지 되묻고 싶다. 우리 대학의 학생들은 술자리나 삼삼오오 모인 자리에서는 학교에 대해서나 사회에 대해서나 생각이 많다. 불만도 토로하고 논쟁도 활발한 듯 하다. 하지만 정작 그 마땅한 의견들이 개진되고 수용되어야 할 자리에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최근 인문학관 PC실이 잠시 폐쇄되었을 때에 많은 학생들이 구구절절한 불평을 늘어놨다. 하지만 그 여럿 가운데 적극적으로 문의하거나 건의하는 학생은 몇 되지 않았다.

성폭력 사건에 관한 여러 논란 가운데에도 총여 홈페이지 게시판의 관련 게시물들은 하루에 열 개를 채 넘지 않았다. 아니, 그 정도면 논쟁이 활발해 보일 정도다. 서울시립대신문의 여론면에 자진해 글을 써보겠다는 학생 또한 지난 학기 동안 손에 꼽힐 정도였다. 오히려 교수님이나 교직원이 더 적극적이다. 학생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학내 문제로 인한 학생들 간의 담론이 형성되기도 힘들다.

학생들이 활용할 수 있는 소통의 수단과 공간은 많다. 홈페이지의 게시판이 될 수도 있고 학내 방송이나 신문에의 독자투고, 대자보, 혹은 화장실 벽에 붙은 A4종이 위라고 해도 말할 수 있고 쓸 수 있다. 그것이 소통과 여론의 장(場)이 될 수 있도록 자격을 부여하고 힘을 실어 주는 것은 학생들 스스로의 몫이다.

학교의 가장 중요한 주체는 학생들이고 바로 우리 ‘7천 시대인’이다. 개인의 시대라고 하지만 그것은 서로가 뿔뿔이 흩어져 입을 다무는 것이 아닌 모두가 각자의 소리를 냄을 지칭하는 것이다.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에서 그치는 것은 생각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생각을 소리내 말할 수 있는 적극성을 우리대학의 학생들이 가졌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 서울시립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