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 여 교사의 비율이 급증하여 학생들이 ‘여성화’될 우려가 있다.’ 몇 년 전인가 이런 식의 기사를 보고 쓴 웃음을 지은 적이 있다. 흥미로운 것은 한국처럼 아이 기르기를 여성의 전담물로 강제하는 사회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육아를 전담하면 아이가 여성화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이는 육아와 같은 ‘사적인 일’들은 여성이 담당해도 문제가 없지만 교육과 같은 공적이고 사회적인 일들을 여성이 담당하는 것을 거부하는 한국 사회의 남성중심적 이데올로기를 여실히 보여주는 한 사례이다.

남성의 전유물로 당연시 여겨오던 공적 영역들에 여성이 ‘침입’하는 것을 경계하고 배제하는 작업들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겉으로는 진보적이고 합리적인 척하는 대학 사회 또한 다르지 않아 대학 사회에 여성 인력이 진입하기란 여전히 어렵다. 남성주의적인 도제 시스템으로 이루어진 대학 사회에 여성 연구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현재 연구자나 강사로 활동하는 여성 인력은 급격히 증가하였다.

그러나 여자 강사가 많아진 것에 비해 여자 교수의 비율은 늘어나지 않았다. 언젠가 소위 대학 당국자란 분께서 ‘어린 여자 강사’가 강의를 하면 학생들에게 ‘교수’로서의 품위와 권위가 서지 않기 때문에 나이가 든 남자 강사를 선호하게 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또 여자 강사들 사이에는 ‘나이가 좀 들면 강사 노릇하기도 어렵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도는 실정이다. 결국 여자는 ‘젊으나 늙으나’ 간에 언제나 대학 (강사)교수로서 부적격자일 뿐이다.

얼마 전에 서울대 여 교수회가 서울대의 여 교수 비율을 늘려야 한다는 성명서를 낸 바 있다. ‘여성 할당제’나 여성 인력 충원에 대한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나오는 ‘우려’의 변 중 하나가 그러면 능력도 안 되는 사람을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채용해야 한다는 말이냐 라는 식의 질문이다. 소위 진보적인 대학 교수들조차 자기 학과에 여성 교수가 없는 이유는 “뽑을만한 사람이 없어서”라는 일견 합리적인 듯한 대답을 마련해 놓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실제로 능력 있는 여성 연구자가 없어서 교수로 채용하지 못하는 경우는 결단코 없다. 단지 여성이 임용을 담당하는 주체들의 안중에도 없기 때문이다. 여성이 남성적 대학 사회에서 안중에 든 존재가 되려면 남성보다 아마 백 배 이상의 탁월함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여성이 남성보다 백 배 이상 탁월할 때 그녀는 안중에 든 존재가 되기보다는 ‘부담스러운’, 왠지 튀는, 눈 밖에 난 존재가 되어버릴 확률이 높다. 그래서 여성은 학문적으로 아무리 탁월해도, 내지는 동료 남성 연구자들과 동등한 능력을 갖고 있어도 언제나 눈앞에 존재하지 않는 자이거나 눈 밖에 난 자가 된다. 남성 중심적 이데올로기를 변화시키지 않는 한 여성은 언제나 자기 뒤를 따라다니는 ‘부적격자’라는 꼬리표를 떼기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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