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복인자 ‘신자유주의 바이러스’의 활동이 시작됐다

발이 느린 거북이가 토끼보다 한 걸음 앞에서 출발하는 경주이야기가 있다. 출발신호가 울리고 토끼와 거북이는 결승점을 향해 달린다. 그러나 결승테이프를 끊을 때까지 발 빠른 토끼는 결코 거북이를 따라 잡을 수 없다. 토끼가 거북이의 출발점에 도착했을 때 거북이는 그동안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간다.

다시 토끼가 거북이의 위치까지 도달했을 때에도 거북이는 이미 그 자리를 이탈해 앞으로 이동해 있다. 이러한 논리를 계속해서 반복적용하면 결국 아무리 발빠른 토끼라 해도 거북이가 잠을 자지 않는 한 경기에서 이길 수 없다.

현실과 괴리된 이야기지만 이런 어처구니 없는 발상이 현재 지구상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앞서 간 자를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도록 불공정한 규칙을 강요하고 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사회주의의 붉은 기는 사실상 땅에 떨어졌다. 레닌그라드의 레닌상이 철거되면서 다시 한번 현실사회주의의 실패를 인정했다. 소련이 무너진 지구엔 오로지 미국만이 남았다. 자본주의의 독주체제에서 미국은 세계의 경제, 정치, 문화의 새로운 밑그림을 자신들의 구미대로 만들어 갔다. 그 이론적 근거가 신자유주의다.

클린턴은 신경제 중심의 산업구조로 개편하며 세계를 규격화시키려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국의 정부가 보호무역을 포기해야 했다. 작은정부론은 여기서 비롯됐다. 각국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여 전 세계의 상품과 금융의 이동이 한 나라처럼 자유롭게 하자는 사탕발림이었다. 약소국의 반발은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을 내세워 막았다.

덕분에 미국의 독주는 계속됐다. 10년동안의 호황이라는 경이로운 기록까지 세웠다. 그러나 우려대로 약소국의 빈곤이 가중됐다. L.C. 서로우의 제로섬 게임처럼 미국의 호황은 약소국의 불황으로 이어졌다. 신자유주의의 윈윈 환상은 무참히 깨어졌다. 미국중심으로 재편된 세계금융시장은 또 미국투기자금의 노름판이 됐다. 남미에서 시작된 금융위기 도미노는 세계를 휩쓸며 신자유주의의 허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모든 면에서 한발 앞서 출발한 미국은 언제나 선두였다. 유럽이나 일본 등이 바짝 따라오면 미국은 신자유주의를 잠깐 접고 슈퍼 301조나 203조를 들이밀어 쫓아냈다.

게다가 지난해 말부터 불기 시작한 미국경제의 추락마저 다른 나라에 책임을 전가시키고 있다. 불황을 타개할 방법이 미국내에는 없다고 보고 각국에 통상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부시대통령은 강한정부로 선회하며 자국이익을 위해 신자유주의를 잠시 밀어놨다.

김대중정부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도 마찬가지다. 김대중대통령은 취임하면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모토로 내걸었다. 시장논리를 중시한 작은 정부론은 신자유주의의 논리다. 투자를 한다면 외국자본이라도 괜찮다는게 김대중대통령의 입장이었다.

그 결과 국내금융계 상당부분이 외국계로 넘어갔다. 하나은행, 제일은행, 국민은행 등의 대주주는 외국인이다. 외국계 대주주들은 국내 지배구조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정부의 자금지원 명령을 거부하는 등 신선한 충격을 줬다. 그러나 최근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제일은행 호리에 행장의 스톡옵션관련 횡포가 포착됐고, 일은증권의 대주주인 AOL의 비행이 문제되고 있다. 해외자금들이 국내 금융계를 쥐락펴락하며 제멋대로다.

보건, 교육에도 신자유주의적 발상이 깊숙이 개입돼 이젠 대책이 없을 정도로 어려운 지경에 와 있다. 의약분업은 병원과 담합한 대형약국만 살아남게 만들었고 교육개혁은 사교육비 증가, 교실붕괴를 자초했다. 정부의 개입이 필요한 공익 인프라에는 신자유주의식 정책으로 일관했다.

정작 간섭이 적어야 하는 경제분야에는 사사건건 시어머니 노릇을 하고 있다. 결국 김대중정부는 작은정부론을 포기하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추억의 책갈피로 꽂아 둔 것으로 보인다. 시장경제 논리가 땅에 떨어진 것은 지난해 11·3 퇴출대상에서 현대건설을 제외하면서부터다. 지금까지 현대건설에 긴급수혈하는 데 들어간 공적자금만도 수조원이다.

또 지난달부터 내리꽂기 시작한 주가를 올리기 위해 국민들의 돈인 연기금을 투자손실여부에 상관없이 투입했다. 강한정부다. 반면 재벌을 비롯한 기업주들은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아래 노동자들을 대거 해고시키고 있다. 대우의 노동자 2만명은 아무런 대책없이 졸지에 실업자가 됐다. 실업자수가 100만명을 넘은 지 오래다. 그런데도 정작 경영책임을 져야 하는 김우중 회장은 해외도피중이고 기업주들은 면죄부를 받고 있다. 미국발 신자유주의 논리 그대로다.

경제는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올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중산층이 무너져 10대 90사회가 됐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개인파산이 늘고 자살사이트가 횡행한다.

국내외적으로 속속들이 드러나는 신자유주의의 폐해는 태생적 한계다. 그동안 잠재돼 있었던 게 이젠 곪아 터지고 있다. 잠재보유인자인 ‘신자유주의 바이러스’가 또 어느 부위를 뚫고 나올 지 두려울 정도다.

미국의 자국중심주의적 상황논리로 이용되는 신자유주의와 김대중정부의 어설픈 따라하기는 결국 약자들을 더 궁핍하게 만든 꼴이 돼 버렸다. 신자유주의 아래서는 미국이나 기업주처럼 한 발 앞서 시작한 이들을 따라잡기 어렵다. 여기에 풀기 어려운 구조적 숙제가 있는 것이다.

박준규 『내일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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