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번쯤 카툰(Cartoon)을 보고 “이건 내 얘기인데!”하며 고개를 끄덕여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신문의 한 컷 만화가 됐든, 인터넷에 연재되는 캐릭터 카툰이 됐든 말이다. 카툰(Cartoon)은 흔히 대상의 성격을 과장하거나 생략해 익살스럽고 간명하게 인생이나 사회를 풍자·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한 컷 또는 네 컷 정도의 만화라 알려져 있다.

지난 겨울 유럽과 이슬람권에서 이슈가 된 ‘마호메트 만평’을 기억할 것이다. 이슬람교의 신(神)인 ‘마호메트’를 풍자한 만평이 덴마크 신문에 게재되고 이에 반발한 이슬람교도들이 항의 시위를 하는 등 이는 국제적으로 초미의 관심을 끈 큰 사건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별 것 아닌 만화 한 컷’으로 생각하고 지나칠 수 있는 카툰(Cartoon)은 알게 모르게 우리의 생활 속에서 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하지만 카툰(Cartoon)이 이렇게 종교와 같은 민감한 부분에 대해서만 그려지고 주목받는 것은 아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몇 년 전부터 인기를 끌고 있는 에세이툰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린 이와 보는 이가 감성을 공유하는 만화, 에세이툰

인터넷에 등재되는 에세이 형식의 만화들을 통칭해 에세이툰이라고 부른다. 에세이툰은 에세이(Essay)+카툰(Cartoon)의 합성어로 이제는 카툰의 한 종류가 됐는데, 대개 일기처럼 하루하루 자신의 생각을 담아 인터넷 사이트에 올린 만화이다. 따라서 일상의 작고 소소한 에피소드가 만화로 그려져 많은 사람들이 그 감성을 공유하고, 그 안에서 각자 삶의 가치관을 발견하기도 한다. 변한 것은 카툰(Cartoon)의 주제와 내용만이 아니다.

‘만화’하면 당연하게 떠올려왔던 3~40권에 달하는 장편 만화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웹툰이나 에세이툰을 엮은 신종 단편 만화책들이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

이렇게 짧은 만화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해 까지 「서울시립대신문」의 ‘시대만평’을 4년간 맡았던 박철수(경제 98)씨는 “사회적인 문제보다는 개인의 고민에 눈을 돌린 현대사회의 분위기가 반영된 결과”라며 “그러나 시사에서 멀어져가고 재미만을 중시하는 요즘 대학생들의 모습은 안타깝다”고 말했다.

만평, 두세 번 생각하게 만드는 풍자의 결정체

그렇다면 “시사만화 재밌나?”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할 사람은 얼마나 될까? 사실 우리 주변에는 아무리 봐도 무슨 말인지 도통 알 수 없는 시사만화들이 많다. 시사만화는 카툰(Cartoon) 중에서도 시사문제를 주제로 그린 만화이면서 그 안에는 작가의 생각, 철학, 이데올로기가 들어있기 때문에 작가의 생각을 읽어내지 못하면 작품 자체의 의미도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만평에는 단순한 시사만화에 비해 좀 더 작가의 가치관이 깊게 묻어나 있다고 볼 수 있다.

만평은 말 그대로 만화로 그린 논평(論評)인데, 사회적인 하나의 이슈에 대한 작가의 느낌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면서도 그와 관련된 다른 이야기를 곁들여서 보는 이로 하여금 여러 번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그 역할이라 할 수 있다. 일반적인 만화(Comics)나 에세이툰에 비교해봤을 때, 만평이 다소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카툰(Cartoon)을 보는 것은 취미와 기호의 문제이다. 하지만 이왕 보는 것, 편식하지 말자. 에세이툰은 메말라 있는 대학생들에게 이웃을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을 갖게 할 것이다.

그러나 ‘사회 풍자’라는 카툰(Cartoon)의 본 역할에 충실한 만평과 시사만화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분명히 있다. 만평은 드러나있는 사회적 현상에만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하고 나아가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날카롭고 균형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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