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적(수덕사 대웅전) 답사를 다녀와서

5월 11일. 아침. 전날 일찍 잤지만 역시나 늦잠을 잤다. 아침도 못 먹고 오른 버스 안. 뒷좌석의 몇 몇 학생들이 신나게 떠들어 대는 모습에 기분이 사납다. 평일인데도 차가 막혀 억지로 웃고 있지만 오랜 차 시간만큼 짜증이 쌓여간다.

수덕사 입구에서 전체 요약도를 보았다. 이리 저리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해 산사를 접할 기회가 많았지만, 오랜만에 완전한 형태(일주문, 금강문, 사천왕문)를 갖춘 산사를 만났다. 대부분의 산사는 일주문이나 금강문이 하나로 합쳐지거나 아예 없는 형태로 간소화되기 마련인데, 수덕사는 삼국시대에서부터 고려, 조선을 이어 온 오랜 전통을 담고 있는 만큼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일주문, 금강문, 사천왕문. 사찰에 대한 이해는 바로 이 문들에 대한 이해에서 시작한다. 사찰의 첫 문인 일주문은 별다른 치장 없이 기둥이 일렬로 늘어서 있는 문이다. 속세와 가장 가까이 있는 문으로 속세에서 담아온 마음을 버리고 오직 불심 하나(一心)만을 찾게 한다.

사천왕문을 통과하니 그토록 기다렸던 대웅전이 나왔다. 하지만, 기대가 너무 커서일까? 대웅전은 너무도 초라하다. 세월의 풍파를 겪어온 모습이라지만, 사찰의 규모가 커서인지 더욱 애처로워 보인다. 우리나라 유산 어느 것도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지만 그래도 명색이 국보. 국보 49호라는 이름이 그저 오랜 시간에 붙여진 것이라면 나는 주저 없이 실망하련다. 패배자(백제)의 땅에서 피어난 것들이 전부 제 빛을 찾지 못한다지만 이것은 너무하다.

실망을 잠시 감추고 있을 무렵, 박물관장 이익주 교수님의 자세한 설명이 있었다. 설명을 들을수록 점점 대웅전의 아름다움이 또렷해졌다. 정면이 넓고 측면이 좁은 충남 지역 건축의 특성에서부터 각 보들을 밖으로 돌출 시키는 파격과 우미량과의 조화가 뿜어내는 아름다움은 실로 경이였다.

아쉽게 지붕 전체의 모습을 볼 수 없었지만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힘이 있었다.

그 순간, 대웅전을 보고 처음 느꼈던 감정이 교차했다. 재작년 가을, 처음 수원답사를 한 이후, 답사의 즐거움을 느껴, 한 것 역사와 우리나라의 미에 대한 공부를 하고 여러 차례 답사를 하였지만, 나는 이렇게 드러내 놓은 아름다움조차 느낄 수 없었다. 친구들 앞에서 온갖 잘난 척은 다 해 가면서 마치 역사에 일각연이 있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결국 국보급 보물조차 제대로 보지 못하는 바보였다.

이렇게 작은 사람이었으니 아침 출발이 상쾌했을 리가 없다. 수덕사의 따뜻하고 인자한 아름다움을 조금이라고 지니고 있었다면, 오늘 아침 버스 안은 훨씬 즐겁고 여유로웠을 것이다. 일주문, 금강문, 사천왕문을 지나는 동안 깨닫지 못했던 것을 대웅전에서야 깨달았다. 頓悟라더니 바로 이것이 돈오리라. 남을 탓하기 전에 내 자신을 뒤돌아보고 부족한 것을 채우는 지혜가 필요함을 이 순간에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이 오직, 보다 아름다운 것을 느낄 수 있는 자격을 얻는 길이리라.

이제 돈오를 겪었으니 漸修를 실천해야지. 다음번에 수덕사 대웅전과 같은 친구를 만날 때, 그의 깊은 아름다움을 바로 깨닫고 느낄 수 있도록 끊임없이 실천하고 성장하는 내가 되리라. 깨달음을 담고 내려오는 사천왕문, 금강문, 일주문은 속세로 가는 길이 아니라 보다 넓은 세상으로 가는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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