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 총선을 앞두고 학생운동권 출신 4명이 보수정치권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이 가운데는 5공 시절 공안검사였던 이사철 한나라당 대변인에 의해 구속, 실형을 선고받았던 박종운 전 민주화추진위원회 위원장도 포함돼 있어 관심을 끈다.

87년 당시 공안당국은 박종운씨를 체포하기 위해 그의 운동권 후배였던 박종철 열사를 희생양으로 내몰았다. 박종철 열사는 운동권 특유의 의리로 박종운씨를 보호하고자 했을 법도 하다. 그러나 박종운씨는 자신이 그토록 혐오했던 사람들의 틈에서 또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박종운씨는 입당 기자 회견에서 “종철이를 잊지 않는 마음으로 정치를 하겠다”고 이상적이고 추상적인 소감을 밝혔다. 이에 덧붙여 이회창 총재의 리더십을 찬사했다. 그는 이회창 총재는 합리적 법치주의자이기 때문에 한나라당은 민주적이며, 민주노동당 보다는 한나라당에서 운동권 출신들이 실질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혹자는 운동권 출신의 보수당 입당을 두고 ‘역사와의 화해’라는 멋진 말로 포장을 하기도 한다. 화해란 말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무엇인가. 화해의 사전적인 의미는 ‘다툼질을 서로 그치고 풂, 분쟁 당사자가 서로 양보하여 상호간의 분쟁을 그치기로 약속함으로써 성립하는 계약’이다. 쉽게 풀어 말하자면 화해는 어느 한 쪽도 절대적인 우위를 가지지 않는 세력간의 팽팽한 긴장관계에 대한 해소를 의미한다.

그런데 정작 우리 나라에서 화해란 말은 불리한 세(勢)를 보충하기 위한, 또다른 세를 포섭하기 위한 정략적 수단으로 악용돼 왔다. 예를 들어 64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한·일 회담을 추진할 당시 역사와의 화해가 언급되었으며, 김대중 대통령이 영남지역을 의식해 감옥에 갇힌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수정을 풀어줄 때 화해란 말이 사용되었다. 박종운씨의 화해도 이런 차원의 것일 수밖에 없다.

이번 총선 정국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다. 첫번째는 지금 국민들의 세가 정치인 개인들의 세보다 절대적으로 우세하다는 것이다.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 운동이 범국민적으로 확산되는 현상은 그 동안 부패해 있던 정치권에 대한 반발 심리에 기인하고, 참여 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한 국민 의지의 표출이다. 다시 말해 사회적으로 유리해진 세의 입장에 국민들이 있고, 선거철마다 단골손님처럼 등장하는 정치권의 지역감정 운운은 그 힘을 점점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둘째는 박종운씨와 같이 개인적인 차원의 입신 욕구를 보이는 어리석은 인사들을 청산하는 기회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와 반민주의 개념이 묽어져버린 현실에서 정치인들의 당리당략에 휘말려 세의 역전(逆轉)을 돕는 386세대의 행위는 역사의 끝에서 절대 화해될 수 없음을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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