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철학

헤겔 철학 하면 의례 떠올리게 되는 것이 변증법이다. 정립-반정립-종합의 삼각도식으로 익히 들어온 변증법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만큼이나 난해하다고들 한다.

변증법 이해의 출발점은 사물들의 존재방식에 대한 변증법적 설명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사물들의 현존(existence), 즉 사물들이 눈앞에 드러나 있는 상태를 존재라고 여긴다. 그런데 변증법의 관점에 따르면 현존은 사물들의 존재의 일면만을 본 것에 불과하다. 모든 사물은 일정한 형태를 유지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형태 내지 다른 사물로 변화한다. 사물들이 일정한 상태에 머물러 있지 못하고, 끊임없이 변화하게 되는 이유는 사물들이 눈앞에 드러나는 현존 뿐만 아니라, 눈앞에 드러나지 않지만 변화를 일으키는 다른 측면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변증법에 따르면 이 다른 측면이 바로 본질(essence)이다. 따라서 현존 뿐만 아니라 모든 사물이 본질의 측면을 지니고 있다고 보아야지만 사물의 존재 전체를 온전하게 볼 수 있다. 변증법에 따르면 현존과 본질의 통일이 바로 사물의 존재 전체이자, 참다운 존재방식이다.

본질은 눈앞에 드러나 있지 않으나 사물들 내부에 깃들어 있으면서, 모든 사물로 하여금 특정한 현존의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변화하게 한다. 예를 들어 도토리가 떡갈나무로 성장하는 것은 현존으로서의 도토리 내부에 떡갈나무의 배아가 본질로서 잠재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도토리의 현존이 정립에, 잠재해 있는 배아의 발현이 반정립에, 떡갈나무의 성장이 종합에 해당된다. 그런데 사물들의 변화는 그 본질에 따라 우연적이지 않고, 특정한 방향으로 진행된다. 이 또한 본질에 기인하는데, 도토리는 사과나무가 될 수 없고, 콩 심은 데서 팥이 나올 수 없는 것이다.

개별 사물의 예에서 파악된 현존과 본질의 변증법은 사물들을 포괄하는 전체로서의 세계 역사에도 적용이 된다. 여기에서 특히 헤겔의 변증법이 의도하는 핵심을 발견하게 된다. 세계역사도 태초부터 끊임없이 변화, 발전해왔는데, 그것은 우연에 의해 이루어져 온 것이 아니라, 세계역사의 내부에 잠재해 있는 본질이 실현되어온 과정이다. 이때 세계역사의 본질을 헤겔은 이성이라고 한다. 헤겔의 변증법 속에서 세계역사는 비이성적인 현존이 타파되면서 이성적인 본질이 점점 더 단계적으로 실현되는 과정으로 파악된다.

헤겔의 변증법에는 유럽문명의 지배적인 정신적인 원리가 표출되고 있다. 그것은 그리스에서 발원하여 근대에 이르러 정점에 달한 합리주의(rationalism)이다. 유럽문명은 “세계는 이성적이다”라는 합리주의의 정신에 기대어 끊임없이 현실 개선에 매진하여 왔으며, 그 결과로 현대 산업문명에 도달하게 되었다. 헤겔에 이르기까지 근대 유럽인은 자신들이 추구해온 합리주의가 역사적으로 완성의 단계에 도달한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헤겔 사후에 반주류인 비합리주의의 도전이 드세진다. 헤겔 철학은 쇼펜하우어와 니체 등에 의해 공격받았고, 특히 20세기 후반에 들어서서 물질문명의 풍요 속에서의 정신문명의 황폐화, 극복되지 않는 경제적 빈곤, 파시즘, 양차대전, 환경파괴 등 유럽 현대 문명이 초래한 새로운 야만을 경험하면서, 합리주의는 위기 상황에 봉착한다. 니체와 하이데거의 비합리주의의 철학을 이어받은 포스트모더니즘에 의해 합리주의는 ‘해체’의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리고 있는데, 이때 합리주의의 대표적 철학인 헤겔의 변증법이 주요 표적이 되고 있다.

이성백
(철학/사회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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