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규(법학 / 민사)

오는 4월 실시될 총선을 앞두고 시민단체들이 낙천·낙선운동을 벌이고 있으며, 그 파장이 상당한 것 같다.

제도권에서는 이 시민운동의 불법성을 지적하고 있다. 현행 제도와 법아래서는 이 운동의 방식이나 내용이 위법일 수 있고, 그에 대해서는 실정법에 따른 제재가 따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불법성 주장을 듣고 있노라면 마치 군사정권하에서 ‘일부 몰지각한 자들의 불법행위’를 엄단하겠다던 서슬이 퍼렇던 말이 떠오른다. 그런 억압 속에서도 민주시민들은 ‘불법적인’ 독재에 항거해 ‘불법적인’ 방법으로 투쟁하여 왔다. 낙천·낙선 운동을 적법성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사람은 이미 역사의 잘못된 편에 서 있다.

진실은 이 운동이 실질적으로 민주적 정당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 원인은 바로 현재의 비민주적 정치 시스템이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정당의 목적, 조직과 활동이 민주적일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제8조 제2항 전단), 현재 정당의 모습은 어떠한가? 선거 때마다 마음에 맞는 선택지가 없어서, 왜 당원들이 선택한 후보들이 아니라 보스가 점지한 ‘그러그러한’ 사람들 중에서 골라야 하는지 하는 불만은 필자만 가졌던 것이 아닐 것이다. 정치권은 보스중심의 정치 시스템을 청산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도 기존 정당들이 정치개혁 없이 시민단체의 요구를 ‘겸허히 수용하여’ 또 다시 밀실공천을 한 것은 ‘음모’는 아닐지언정 역사 앞의 ‘잔 꾀‘에 불과하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시민단체에 의해 낙천 대상자로 지명되었거나, 기존 정당에서 낙천한 인사들이 중심이 되어 신당을 창당하면서, 바로 보스중심의 정치제도 타파를 주장하고 있다. 이들이 공천과정에서 소속 정당으로부터 푸대접을 받고 나서야 그런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한심하고, 보스 정치에 잔뼈가 굵은 사람에게서 개혁을 구할 수 있을 지 의문이며, 또 다시 국민을 속이는 정치적 제스쳐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어쨌거나 말은 바른 말이다. 보스정치를 타파해야 한다.

한편 이러한 이합집산 현상을 두고 시민단체의 운동이 엉뚱한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느니, 지역주의를 강화시켰다느니, 여권에 유리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느니 말이 많다. 그러나, 시민운동의 의의를 이번 총선에 미칠 영향에 한정하여 근시안적으로 평가할 일은 아니다. 우리 국민은 그런 유형의 온갖 ‘속임수’에 불구하고 여소야대와 정권교체를 이루었으며, 이번 총선결과도 지켜보면 안다.

시민운동은 민주주의의 도도한 흐름이며 설사 이를 통해 비민주적 정치세력이 단기적으로 ‘부당한’ 이득을 보더라도 결국은 그 물결 앞에 쓸려가고 말 것이다. 시민단체가 낙천대상자 선정과정에서 몇가지 문제점을 보여주었고, 시민단체의 대표성에 문제가 제기될 수 있으나, 여기에 매달리는 것도 곁가지를 잡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위법한’ 시민운동이 언젠가 ‘반드시’ 승리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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