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활 최초의 벽 - 사투리

학교 진입로 게시판, 학생회관, 각 건물들…. 요즘 교내 어디에서나 눈에 띄는 대자보가 있다. 향우회 대자보가 그것이다. 이제 입학식을 한 지도 이십여 일이 지나고, 학생회관 앞에는 학생복지위원회가 각 출신 학교별로 신입생의 명단을 적어 놓았다.

슬슬 내 고향 사람 얼굴 한 번 보고 싶어지는 때인 것이다. 향우회에 참석하는 학생들은 향우회의 다른 여러 가지 매력들도 있지만, “고향 사람들을 만나면 왠지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어 향우회 사람들에게 정을 느낀다”는 이동규(도시사회 99) 영주향우회 회장의 말과 같이, 타지에서 고향의 언어를 부담 없이 쓰는 편안함이 있다고 말한다.

우리 대학은 전체 학생의 절반 이상이 지방 학생이다. 서울 소재 대학이기는 하지만 서울 출신의 학생들보다는 지방 출신 학생들이 더 많은 것이다. 그러나 학생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살펴보면 서울말이 사투리보다 현격하게 많이 쓰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방 출신 학생 중에서 자신의 출신 지역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다.

00학번 새내기들은 아직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대학 생활에서 접하는 여러 가지 새로운 문화에 충격을 느끼고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특히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들은 이와 같은 문화 충격을 이중, 삼중으로 겪고 있다. 고등학교에서와는 판이하게 다른 대학 생활, 고향의 부모님과 떨어져 사는 데서 오는 막연한 불안감, 고독감, 그리고 학교 생활에서의 지역 문화 혼재 등이 그 원인이다. 그 중 일상 생활과 가장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이 언어라고 할 수 있다.

포항 출신의 송한근(행정 00)씨는 “사투리 쓰는 애들이 말을 하면 친구들이 막 웃고 즐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기분이 그렇게 나쁜 일은 아니므로 특별히 개의치는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물론 송한근씨처럼 자신의 말을 아끼고 당당하게 사용하거나 오히려 즐기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사투리 쓰는 것이 재미있다고 웃는 것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 이미 서울 중심주의, ‘지방문화=이등문화’라는 편견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적지 않은 수의 지방 출신 학생들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 “의식적으로 사투리를 안 쓰려고 노력하는 것은 아닌데, 표준어를 쓰는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나도 함께 표준어를 쓰게 된다.”는 손현진(국어국문 99)씨는 “사투리를 쓰면 왠지 모르게 분위기의 흐름을 타지 못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어떤 사람이 사투리를 계속해서 쓰고 어떤 사람이 안 쓰는가를 관찰하면 본질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대체로 남자보다는 여자가 사투리를 쓰지 않으려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사투리로 인한 피해의식의 발로일 수 있다. 언어에도 권력관계가 존재하는 것이다. 많은 여학생들이 ‘사투리를 쓰면 왠지 촌스러워 보일 것 같고 분위기에 적응하기 위해’ 자신의 말을 고치려 노력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방 언어를 경시하는 풍조는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데에서 극복될 수 있다. 더불어 사투리를 희화화시키는 문화적 분위기도 사라져야 할 것이다. 새학기의 문화충격을 최소화 할 수 있도록 적어도 언어에서만큼은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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