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리스파이스와의 만남

델리스파이스, 그들이 신선하고 맛있는 재료로 만든 1집을 들고 사람들 앞에 나타난지도 어느덧 3년이 지났다. 데뷔 앨범 발매 전부터 이미 인디씬에서 인기 밴드로 자리잡고 있었고 데뷔 앨범이 5만 장이나 팔려나갈 정도로 큰 반응을 얻었던 그들이지만, ‘주류’의 세계는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슬프지만 진실’, 이것이 그들이 3년간 이른바 주류라는 곳에서 부딪히고 깨진 후에 내린 결론이다.

“누군가에게 얘기를 해도 들어주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무기력해지고 어떻게 보면 자포자기라도 한 듯한 심정을 여과 없이 담아낸 것이 이번 앨범이죠.” 김민규(보컬, 기타)씨의 말은 이번 앨범의 가사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2집의 <종이비행기>에서 “누군가 이걸 보겠지, 잡아 주겠지 하는 기댈 갖고” 종이 비행기를 띄우던 기대는 3집에서 “누구도 귀기울이지 않았어 목이 터져 버릴 것만 같은데”라는 절망으로 바뀌었다.

유난히 죽음에 대한 가사가 많은 것도 같은 이유이다. 1집과 2집이 고독과 외로움의 정서였다면, 3집의 주된 정서는 의심할 바 없이 분노이다. 단지 표면으로 보여지는 죽음으로서의 죽음이 아니라 세상에 대해 느끼는 좌절감이 죽음의 형태로 표현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가사 뿐만이 아니라 사운드에서도 드러난다. 이들은 특별히 거칠어진 것이 없다고 말하지만 이전 앨범에 비해 투박해진 사운드는 그들의 분노를 느끼고 표현하는 데 있어 어쩌면 더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들이 정서적 근원으로 둔 인디씬은 뿌리째 흔들리고 있고, 현재 몸을 담고 있는 주류 세계는 이들에게 4곡의 ‘금지곡’의 딱지를 선사했다. 이들이 이런 현실 앞에서 느끼는 감정은 과연 어떤 것일까. 그들은 과연 어느 편에 속해 있는 것인가. 대답은 “아무 편도 아니다”이다. 그들은 스스로가 “어느 쪽에도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어느 곳에도 속해 있지 않고 누구의 편에도 서지 못하는 것, 이것이 현재 델리스파이스가 지니고 있는 정서이다.

그들은 인디로부터 냉혹한 주류로의 방향전환에서 ‘살아남은 자’로서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 “앨범을 내고 성장을 하는 만큼 치러야 하는 대가도 있는 거라 생각합니다. 활동이 많아지고 많은 사람들 앞에 나갈수록 때로는 하고 싶지 않은 부분들도 감당해야 하는 것이죠. 모르고 시작한 것이 아닌만큼 우리가 감수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델리스파이스가 처음 PC통신을 통해 결성될 당시 그들이 원한 것은 ‘편견 없는 음악’이었다. 거친 환경에도 밝고 거침 없이 부드럽게 흘러가는 메인 디쉬에 랩과 국악, 보사노바 리듬 등을 다양한 소스로 쓰는 그들의 음악이 나올 수 있는 것은 그러한 생각을 바탕에 깔고 있기에 가능하다.

이들은 3집까지는 ‘1차 시기’였다고 말한다. 앞으로 나올 앨범의 성격과 방향은 아직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 뒤돌아보지 못하고 달려온 길을 숨 한 번 고르고, 정리하고, 돌아보겠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음악적 취향의 여부를 떠나서 U2나 R.E.M을 좋아하는 것은 언제나 일관되게 성실한 자세로 오랜 세월동안 음악을 하는 태도 때문이라고 말하는 델리스파이스는 공연도 꾸준히 할 예정이다. 오는 4월 16일, 홍대 앞 마스터플랜에서 델리스파이스의 공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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