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속에서 구체화된 수학의 추상화

수학의 유용성에 대한 20세기 초 영국의 대표적인 수학자 해롤드 하디의 얘기를 들어보자. 초등 수학의 (전문수학자들이 초등이라는 말을 사용하였는데 어느 정도의 미적분에 대한 숙련된 지식을 포함한다) 많은 부분이 실질적인 유용성을 지니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수학의 이런 유용한 부분은 수학전체를 두고 볼 때 오히려 우둔하다는 지적이다. 그것들은 미학적 가치가 아주 적은 부분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수학자의 진정한 수학은 페르마나, 오일러나, 가우스나, 아벨의 그것으로 실생활에서 거의 쓸모 없는 것이다.

종종 순수 수학자는 그 업적이 쓸모가 없음을 영광으로 알고 실제적으로 응용이 안된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견해가 있다. 이와 같은 설명은 20세기 초반까지의 순수 수학의 연구 분위기를 규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데 그러한 분위기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순수 수학자들의 다양한 현실참여로 변하게 된다.

암호이론과 게임이론의 비사

수학의 암호이론 및 게임이론은 다음과 같은 2차 세계대전 속의 비사가 있다.
컴퓨터 알고리즘의 시조라 할 수 있는 앨런 튜링을 포함한 9명의 영국 수학자들이 블레츨리 파크에 소집되어 독일의 정교한 암호를 해독하는 작업을 했는데 그들의 작업으로 독일 U-보트의 궤멸을 가져오고 연합군의 대서양 전투를 승리로 이끌게 된다.

미국 국가보안국(NSA-잘 알려진 것처럼 수천 명의 수학자로 구성된 전산망 보안센터를 두고 있다)소속 수학자들의 활약으로 일본의 지원작전을 물거품으로 만들었고, 일본 야마모토 사령관의 비행기를 격추시킨 것도 미국 수학자들의 암호해독으로 가능했다. 현재 미국 국가보안국(NSA) 등 정보기관은 최고의 수학자들을 고용하고있고 고급 논문들은 국가 기밀로 다루고 있다. 이처럼 전쟁에서의 수학자들의 역할은 걸프전 승리 후 ‘이번 전쟁은 수학의 승리’라고 말한 미국의 부시 전대통령 말처럼 점점 증대되고 있다.

현재 수학의 이용분야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지만 현재의 수학은 유용성의 한계를 계속 넓혀 나가고 있다. 크게는 의학, 컴퓨터, 유전공학, 무역, 경제, 국방 등 사회 전 분야에서부터 작게는 컴퓨터 그래픽, 항공기와 반도체칩 설계, 유전학, 사회학, 정보통신, 생태학, 교통문제에 이르기까지 그 끝이 없고, 심지어 미국의 디즈니 영화사는 동영상 제작에 미분기하, 대수기하, 수치해석 등 고도의 수학을 이용한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수학의 직접적인 유용성은 암호이론 뿐만 아니라 금융분야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금융파생 상품 중 옵션거래에 기본이 되는 블랙-숄스 공식은 97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수학자 숄스가 만들었다. 퓨처, 스와프 등 각종 금융 파생상품에 수학자가 깊이 개입해 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다. 일례로 JP 모건에만 수학박사 30여명이 있고 월가에도 1000여명 정도의 수학자가 활약하고 있다. 고난도의 수학적 수식과 프로그램들이 세계 금융 시장을 누비면서 천문학적인 돈거래를 가능케 하고 있다. 파생 금융상품 거래에서 수학자 한 사람이 벌어들이거나 실수로 손해를 입는 금액이 자동차 몇 만대 수출 규모에 맞먹는 세상이 됐다.

정보통신 속의 수학

수학의 또 다른 유용성을 보여주는 분야로 정보통신 분야가 있다. 과거 산업화 사회에서는 하드웨어가 중요했다. 그러나 정보화 시대의 핵심은 소프트웨어다. 다시 말해 고도의 지적 능력이 물건을 생산하는 지식보다 값어치가 나가는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수학의 풍부하고 다채로운 상상의 경험은 기술수준이 상상력의 수준과 맞먹는 시대가 되면서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일례로 네트워크 전용 컴퓨터 언어 자바(Java)의 개발자이며 선 마이크로 시스템의 창업자인 존 게이지는 수학박사 출신이다. 세계 최고의 통신 회사인 루슨트 테크놀로지는 연구원 중 20%가 수학자이며 벨연구소도 50명의 수학 연구팀을 두고 있다. MS사의 경우 프리드만 교수는 학계의 기생충이라는 비난까지 들으며 필즈상을 받은 바 있다.

이처럼 유명한 수학자들의 역할은 계속 증대되고 있는 추세다. DNA와 같은 대규모 정보의 종합적인 분석, 자료처리에 수학자들의 능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실제와의 근접위한 추상화

“지금의 수학은 응용되지 않는 분야가 없다” 미국 산업응용수학회(SIAM)가 선포한 이 말은 수학적 추상이 실재와 가까워지기 위해 더욱 추상화되어 가고 있는 현재의 수학 모습에서 당위성을 보여준다. 끝으로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 속의 말을 인용하겠다.

“삶 속에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실은 결코 수학적 명제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단지 수학에 속하지 않는 명제로부터, 마찬가지로 수학에 속하지 않는 다른 명제들을 추론해내기 위해 수학적 명제를 이용한다.”

조윤희 교수
(수학 / 위상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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