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철학

때로는 죽기보다 싫은 일을 감내하면서도 나는 살고 있다. 이렇듯 ‘산다는 것’은 삶이 부과하는 모든 종류의 의무를 받아들이는 ‘용기’가 필요한 행위이다. 그렇다면 그 삶을 스스로 중지시키는 행위인 자살은 반대로 이 모든 의무들로부터 도망치는 행위인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동서고금의 도덕가들은 자살이야말로 비겁한 탈주이며 죄악이라고까지 말하면서 비판적인 태도를 취한다.

도덕적인 삶은 근본적으로 ‘인격’을 상정한다. 개인은 각자가 지닌 인격이라는 가치를 스스로 고양시킬 의무를 가지며, 이것이 바로 개인적 도덕의 원리가 된다. 물론 인격은 사회적 삶에 의해서 실현될 수 있음이 분명하다. 심지어 수행하기 위해 은둔하는 사람도 정신적 전통과 믿음의 체계를 그가 속한 사회와 공유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도덕적 가치를 단순히 사회적 산물로 보자는 것은 아니다.

법의 주체가 점차 개인으로 옮겨진 것과 마찬가지로 도덕의 주체도 역시 개인이다. 현대사회는 개인주의를 기반으로 하며 사회적 책무가 집단보다는 개인에게 부여된다. 예를 들어 결혼이나 직업은 과거에 집단이 주체가 되어 선택하였으나 오늘날은 개인이 자유의사에 의해 선택하며 전적으로 그 책임을 짊어져야만 한다. 따라서 정치·사회 구조가 권위주의적인 시대에는 개인이 배제될 수 있었지만 민주사회에서는 개인적 ‘인격’이라는 도덕적 가치가 부각되며 사회적인 관점에서도 그 중요성을 갖는다. 선량한 시민이 우선 하나의 인격체이어야 하는 이유는 개인의 건전한 이성, 풍요로운 정신, 확고한 의지를 계발하는 것이 곧 그가 속한 지역공동체의 진보에 기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철학에서는 인격적 가치를 덕(德, virtue)이라고 부른다. 물론 많은 덕목들이 있지만 지성적 덕(지혜), 감성적 덕(절제)과 함께 의지적 덕, 즉 ‘용기’를 꼽을 수 있다. 용기 자체도 질료적인 측면(물리적, 지성적, 도덕적 용기)과 형식적 측면(수동적, 능동적 용기) 그리고 근원의 측면(기질적, 반성적 용기)에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 중에서 특히 ‘도덕적 용기’란 내가 처한 모든 실존상황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행위라고 정의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삶은 결코 기쁨만 주지 않으며, 반드시 의무와 희생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나태와 욕정의 유혹을 뿌리치는 용기와 과오를 인정하는 용기가 있는가 하면, 그 어떤 실패에도 좌절하지 않는 것도 분명 용기의 덕목이다. 그러므로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자살을 의지적 덕목인 용기의 결핍으로 보는 것이다.

사회학적 통계에 의하면 자살은 사회적 응집력과 반비례한다. 이런 맥락에서 루소는 자살을 기도하는 나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죽고 싶을 때마다 선행을 하나 하고 죽으리라 마음먹어라. 만약 도와줄 사람을 찾아 그를 위로해야 한다는 생각이 오늘 하루 당신을 묶어둔다면 내일 역시 그리고 일생동안 당신을 묶어둘 것이다.” 요컨대 자살은 이기주의의 산물인 동시에 의지의 박약이며, 이때 의지는 도덕적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요인을 갖고 있다. 내가 사회와 연결되어 있다는 유대감의 약화됨으로써 결국 나는 실패와 절망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상실하고 급기야 삶을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제 다르게 묻는다. “왜 나는 도덕적이어야 하는가?”

차건희 교수
(철학/문화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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