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 서울 국제 문학 포럼’이 남긴 자취를 찾아서

지난 9월 26일에서부터 28일까지 세종문화회관에서 대산문화재단의 주최로 ‘2000 서울 국제 문학 포럼’이 열렸다. 이번 국제 문학포럼은 노벨문학상 수상자 월레 소잉카,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 알바니아 망명 소설가 이스마일 카다레, 일본 문학 평론가 가라타니 고진 등 19명의 세계 석학들과 김우창, 유종호, 황지우, 박완서, 서정인, 황석영 등 한국을 대표하는 문인 55명이 대거 참석해 그 규모상 유례없는 포럼이기도 했다.

‘경계를 넘어 글쓰기-다문화 세계 속에서의 문학’이라는 큰 주제 아래 ‘세계화와 문학’, ‘세계 시장 경제 체제에서의 글쓰기’, ‘분쟁 속의 작가’, ‘포스트 식민지적 상황에서의 글쓰기’, ‘자연, 시, 동아시아 전통’ 등 9개의 부문별 주제를 14개 세션으로 나누어 새로운 시대에서의 문학담론과 글쓰기에 대해 토론을 벌인 이번 국제 포럼은 그 주제가 포괄적이었던 만큼 실로 다양한 논의가 펼쳐졌다.

서구 편향적인 시각으로 규정되어 문학의 다양성을 해치고 있는 정전(正典), 신자유주의의 영향 아래 자율성을 점차 잃어가고 있는 문학적 현실, 종교와 민족 간의 갈등 속에서 모국어를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던 상황과 그 속에 놓인 작가의 정체성, 계속되는 독재에 대한 투쟁과 분리될 수 없는 글쓰기, 한국계 미국인의 굴절된 의식과 인종 차별 문제, 남북 분단 현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한국 작가의 운명, 동양의 전통 사상에 담긴 생태주의 철학이 제시하는 비전 등 다른 각도에서 보면 좀처럼 함께 묶일 수 없는 주제들이 혼재하는 양상을 보였던 것이다.

이러한 다양성은 문학이 지니는 독특한 위치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즉 개개의 문학 작품들은 당대 현실 속에서 삶의 한 국면이 아니라 삶 전반에 대한 제 나름대로의 해석이며 표현이기에 각 시대가 지닌 모든 문제점들과 뿌리깊게 연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포럼이 의미 있는 이유는 일면 서로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개별적인 논의들이 놀랍게도 서로 다르면서도 비슷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각각의 논의들 이면에서 우리는 과거 인류의 왜곡된 역사가 현재까지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아직까지도 그 후유증을 앓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즉 그것들은 고유한 역사를 지니고 있었던 개개의 국가들에게 강요되었던 근대화 과정과 서구 제국주의의 폭력성으로 인해 왜곡될 수밖에 없었던 현실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가령 프랑스령 마르티니크에서 활동하고 있는 소설가 라파엘 콩피앙은 과거 유럽 식민지 국가 출신 작가들이 겪었던 언어의 이중적 소외 현상에 따른 고통에 대해 말한다. 즉 마르티니크어나 알제리어를 불어로 표현한다는 것은 아무리 그것이 나무랄 데 없이 씌어졌다 하더라도, 모국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지 못했던 것이다. 이에 콩피앙은 작가가 말하는 언어(불어, 영어, 포르투갈어 등) 뒤에 숨겨져 있는 ‘침묵의 언어’(모국어)를 작품속에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한국어와 일본어 사이에 놓여져 있는 소설가 박완서의 경우도 이와 비슷하다. 그녀는 식민 모국으로서의 일본에 분노를 느끼면서도 일본 사소설이 지닌 아름다움에 매혹을 느끼는 자신의 이중 감정을 고백한다. 다시 말해 이들에게 있어 ‘자유롭지 못한 모국어’는 벗어나야만하는 보이지 않는 경계였으며, 이것은 역사적 상흔과 깊게 관련되어 있다.

또한 이들 대개가 “상업논리가 예술 작품 생산과 유통의 전 과정에 관여하게 됨으로써 자치성(문학의 자율성)의 원칙마저 흔들리게 됐다”(피에르 부르디외), “훌륭한 문학 작품은 시장의 법칙에 복종하기를 거부할 줄 알아야 한다”(이스마일 카다레) 등의 전언처럼 세계가 점차 신자유주의적인 흐름으로 재편되어가는 현실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하면서 작가들의 비판 정신을 절실하게 요구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즉 마치 보편적인 운명처럼 소개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흐름과 연계된 세계화(globalization)는 “정치·경제적으로 지배 위치에 있는 강대국의 개별적인 전통을 합리화하기 위한 정책이 사용하는 정당화의 탈과 같은 것”(피에르 부르디외)이며 이것은 문학의 자율성을 훼손시킬 뿐만이 아니라 전세계를 단일한 방식으로 획일화시키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여기에 소설가 서정인이 자연을 대상화시키고 상품화시키는 근대적 사유방식에 대해 설명하면서 인용한, 미국대통령에게 보낸 한 추장의 편지가 울림이 있는 것은 지금의 세계사적 흐름에 대한 뼈아픈 충고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떻게 당신들은 하늘과 땅과 온기를 사고 팔 수 있는가? 그러한 생각은 우리들에게는 대단히 낯설다. 우리들은 맑은 공기와 반짝거리는 물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 펄럭이는 솔잎들, 바닷가의 모래펄, 컴컴한 수풀 속의 안개, 우는 오만가지 벌레들, 이 모든 것들은 우리들이 기억과 경험 속에 성스럽다. 당신들은 땅을 정복하면 곧 그곳으로 몰려와서 엄청난 식용으로 산천초목을 집어삼키고 그곳을 황무지로 만들어버린다. 당신들의 도시들의 벗겨진 모습들을 보는 것은 고통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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