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시대인 - 「말」지 정지환(영문 84)기자

안티조선 운동, 우리 대다수에겐 아직 강 건너의 불구경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가까워 오는 불길의 열기에 점점 두 볼이 화끈거리진 않는지? 안티조선 논쟁은 최근 우리 사회의 가장 뜨거운 감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98년 조선일보의 이한우 기자를 가리켜 ‘스승의 등에 칼을 꽂은 청부살인업자’라고 쓴 강준만 교수와 ‘마조히즘적인 정신분열증상’이라고 쓴 ‘말’지의 정지환 기자가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해 벌금형을 선고받은 사건은 이 운동의 도화선이 됐었다. 안티조선 사이트가 생겼고 서명운동과 함께 모금운동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잠재하던 조선일보에 대한 반발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 것이다.

네티즌들이 모금액과 함께 전달한 감사증서를 어느 구석에서 찾아 내보여 주며 씩 웃음 짓던 사람을 만났다. 바로 위 사건의 기자이고 우리대학 선배인 정지환(영문 84)씨이다. 6월항쟁이 있었던 87년도 총학생회장, 전대협 의장대리, 몇 번의 구속이라는 이력과 「말」지 기자라는 현재마저 그가 어떤 학생시절을 보냈을지 충분히 짐작케 했다. “아직도 민중시대라는 말을 쓰나?”라고 그가 물었다. 네. “그 말을 87년부터 쓰기 시작했다. 우리 학생들은 분명 생활이 어렵고 소시민 지향적이지만 그래서 민중의 요구를 누구보다 잘 아는 잠재적 민중성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 그렇게 지었다.” 그제야 그가 선배님이란 실감이 와 닿았다.

“나는 글을 쓰고 싶었지만 사회의 현실을 외면한 채 문학을 하는 것에 회의가 들었다.” 문학에 대한 아쉬움이 있진 않을까. “상상력 대신 현실언어로 이야기하는 것이 언론이다. 나름의 매력이 있다. 그것은 사회를 바꾸는 모험이다. 학생 때 나는 글과 운동의 결합을 꾀했었고 그 결론은 언론이었다.” 그래서 그는 대학시절부터 여러 언론활동에 참여했다. 서대협의 편집국장이었고 89년 ‘대학의 소리’라는 월간지의 창간멤버이기도 했다. 93년에는 ‘일하는 청년들’이라는 모임에 언론분과를 만들기도 했었다. 졸업 후 그는 경실련의 ‘시민의 신문’에 입사해 1년 2개월을 일했다. “전대협 활동이 거대담론을 몸으로 실천하는 운동이었다면 그 1년 2개월은 미시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사회를 볼 수 있었던 기간이었다. 작고 구체적인 개혁의 전술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94년 「말」지에 입사했다. 그가 「말」지에서 학생 때의 꿈을 이어가며 일할 수 있는 것은 행복한 일이지만 ‘질곡으로 점철된 사회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위해 삐딱하게 세상보기’를 고수해야 하는 노력은 분명 힘겹다. “전향, 회피, 배반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후회하지 않는다. 사회의 진보에 대한 희망과 신념은 나를 이끌어준 힘이었다.” 분명 그는 진보의 시대를 열어온 우리의 시대인이다.

최근 지식인들의 조선일보 거부 선언, ‘조선일보 반대 시민연대’ 출범 등으로 안티조선 운동의 열기가 뜨겁다. 그는 여전히 조선일보에 대한 통찰력 있는 기사를 써오고 있으며 여러 대학과 시민단체 등에 초빙돼 한국언론과 조선일보 문제에 관한 강연도 하고 있다. 운동의 도화선은 재판의 패소였지만 그는 승리에 대해 자신있게 말한다. “싸움에선 졌지만 전투는 현재진행형이다” 안티조선 운동과 함께 그의 전투에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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