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만 노동자의 축제, ‘2000 전국노동자대회’

지난 12일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2000 전국노동자대회’에는 3만 여명의 노동자가 모여 ‘구조조정 저지, 노동법 개악 저지, 비정규직 철폐’의 구호 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대회를 마치고 가두행진을 하는 도중 진압경찰과의 마찰로 110여명의 노동자와 경찰이 부상을 당했고, 이 날 노동자들은 경찰과의 계속적인 대립으로 명동성당까지의 가두행진 계획을 접고 종로 2가에서 해산했다.

본 대회 이전에 열린 비정규직노동자대회부터 이번 대회의 분위기는 사뭇 비장했다. 단상 주변에서는 대회를 진행하는 한편 외각 지역에서는 가두행진 시 쓰일 안전모와 각목을 나르기에 분주했다. 가두행진은 ‘때리지마’라고 쓰여진 흰색 안전모를 쓰고 각목을 든 선봉대를 필두로 3만 여명의 노동자가 도로를 가득 메웠고, 종로 3가 한복판에서 개악 노동법을 상징하는 대형 상징물을 불태우는 등 강도 높게 진행되었다.

52개 기업 청산·법정관리·매각 또는 합병 결정, 대우자동차의 부도처리로 인한 예상 직·간접 실업노동자 5만 명. 동절기라는 계절적 요인으로 인한 추가 실업자(건설일용근로자, 신규 졸업자) 13만 명 예상. 현재까지 예상되는 올 겨울의 노동자들의 상황이 이들이 거리로 나와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를 설명해 주는 듯 하다. 구조조정으로 인한 노동자들의 실직은 3년 전 겨울 이미 한 차례 경험했고, 100조가 넘는 공적자금이 금융구조조정에 쓰였다. 그러나 IMF 3년 후 남겨진 과제는 한 번이면 족할 줄 알았던 2차 구조조정과 실업자이다. 다시 원점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다시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정책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있다.

올 하반기에 계속되고 있는 노동법 개정논의인 ‘노동시간 단축합의’와 ‘비정형근로자 종합보호대책’ 또한 노동자들의 동의를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노사정위원회에서 합의한 주5일근무제에 대해서 노동계는 ‘기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국제수준에 걸맞도록 관련 임금, 휴일, 휴가제도를 개선한다’는 부분에 주목해야 한다고 한다. 정부는 벌써 이 부분과 관련해 ‘월차·생리휴가 폐지, 변형근로제 확대, 초과 근로 할증률 25%로 축소‘등의 내용으로 노동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6일에 있었던 당정협의에선 ‘월차 및 생리휴가 폐지’에 잠정합의한 바 있다. 이 같이 “휴가를 줄이고 근로 수당을 낮추는 보조 정책은 근로자의 노동환경 복지를 위한 주5일근무제를 실익이 없는 껍데기 합의로 남게 한다”고 노조측 관련자는 말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비정규직이 전체 노동자의 53%를 차지하고 있다. 노동계에선 이들의 근로조건 개선을 꾸준히 요구했고 이에 정부는 “근로계약기간을 3년으로 연장하고 학습지 교사, 보험설계사, 골프장 경기보조원 등의 특수고용노동자를 ‘근로자에 준하는 자’로 간주한다”는 내용의 ‘비정형근로자 종합보호대책’을 마련했다. 이 정책은 표면상으로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호하는 듯 하지만 실상은 근로계약기간 3년 연장이라는 조건은 계속적으로 많은 수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양산하게 되고 특히 ‘근로자에 준하는 자’라는 개념의 도입으로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차별이 합리화되고 고착화될 수 있다.

노동계는 연말까지 총파업을 잇따라 계획하고 있다. 한국노총은 12월 8일, 민주노총은 12월중에 총파업을 계획하고 있으며 건설업체의 노조 연대 조직인 건설산업연맹은 오는 29일에 총파업에 돌입할 예정이다. 공공연대와 철도노조도 각각 12월중에 총파업을 계획하고 있다. 생업의 터전을 두 번이나 잃게 될 위기의 노동자들이 계획하는 올 겨울의 마지막 축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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