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 『한국 현대의 사상흐름』

윤건차(56 일본 가나가와대학 교수)씨는 이도형(한국논단 발행인)씨의 항의에 대해 잡지를 통해 공개적으로 비판해 달라는 말을 전했다.

윤건차 교수가 쓴 책, 『한국 현대의 사상흐름』이 사건의 시작이었다. 윤 교수가 쓴 이 책의 부제는 ‘지식인과 그 사상 1980∼90년대’이다.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윤 교수는 한국 현대 사상의 흐름과 사상가들의 경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은 그가 분류한 한국 현대 지식인들의 ‘사상적 좌표’이다. 이른바 ‘지식인 지도’를 통해 강준만, 김영민, 고종석, 진중권 씨를 비판적 자유주의로 조갑제, 이도형 씨를 극우반동으로 분류하는 등 60여명의 현대 사상가들의 ‘지적 편향’을 유형화 시켜놓고 있다.

윤건차 교수의 ‘지식인 지도’는 지식인 사회에 작지 않은 파문을 형성하고 있다. 법적 대응의 의사를 밝힌 이도형 씨 이외에도 편집위원의 다수가 거론된 「진보평론」 측은 필요하면 공개적으로 대응하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이에 윤 교수는 문화일보 오승훈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책에 대한 비판은 공개적이고, 사상흐름 전체를 조망하는 차원에서 생산적인 것이어야 한다”고 밝히고 논쟁을 피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윤 교수는 책의 머리말에서도 “ …현실적으로 지식인 개개인의 사상적 특질을 유형화한다는 것은 어려운 문제이다 … 무리하게 유형화하는 것은 지식인 혹은 사상 그 자체에 대한 지적 폭력일 수도 있다 … “라고 비판의 여지가 있음을 지적한다.

이 책은 민주화운동이 과감하게 전개되었던 1980년대 이후부터 2000년 6월까지 한국의 사상흐름을 주제로 하고 있다. 책에서 한국의 근대를 ‘근대로 가는 자주적 발자취, 식민지지배, 해방, 남북분단, 분단의 고착화라는 비극의 시대와 고도 경제성장의 달성’으로 이어지는 ‘압축근대’라 표현하고 있다.

90년대 한국 사상의 흐름을 중점적으로 서술한 윤 교수는, 90년대 사상의 흐름은 일부 마르크스주의자의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전화(轉化)와 재구성’의 모색, 신판 근대화론과 알튀세르·푸코·데리다·들뢰즈 등으로 대표되는 프랑스사상에의 급속한 접속, 포스트모더니즘의 확산에 의한 이전 사상에 대한 회의와 ‘근대’, ‘근대성’의 문제 설정이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의 주된 요인은 89∼91년의 소련·동유럽의 사회주의 붕괴로 인한 마르크스주의의 신뢰성 상실이라고 말한다.

윤 교수가 한국 사상의 흐름에서 주목하는 것은 식민지 경험과 분단이라는 역사의 특수성이다.
윤 교수는 인터뷰에서 현재 한국 학계에 대해 “한국 근현대는 식민지 지배와 남북 분단이라는 특수성을 피해갈 수 없다. 그런데 지금 마르크스주의 계열은 너무 계급투쟁에 매달려 있는 것 같고, 프랑스 사상을 연구하는 쪽은 국가나 통일의 과제를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 것 같다”라고 지적하며, “한국사회의 모순의 해결은 지식인들의 역할인데, 그 지침을 외국에만 의존해선 안 된다”라고 외국 사상을 직수입하는 경향에 대한 비판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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