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미디어 2000’ - 제4회 전국노보전시회

“현장 언론이죠. 노동자들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유일한 매체입니다.” 70년대 노동자들이 노동운동을 시작하며 그들의 목소리를 담아내기 위해 만들어낸 노보의 역사를 살펴보는 자리가 올해로 4번째를 맞이했다. 이 행사는 노동 운동에 있어서 미디어 매체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는 “노동 미디어 2000”의 주간 행사로 ‘서울 국제 노동 영화제’와 함께 열렸다. 시대가 급변함에 따라 노보도 노조 사업장 수만큼이나 다양하게 발간되고 있다.

74년의 빛바랜 금속노조보에는 구구절절히 그들이 나아갈 방향을 그들의 목소리로 담아내고 있었다. 일반 신문의 반밖에 안되는 지면에 빼곡하게 글씨들이 자리잡고 있다. 손으로 직접 쓰는 노보들이 대부분이던 시절, 타자기로 만든 이 노보는 상황이 좋은 편이다. 중소 사업장에서는 누런 A4 용지에 그림을 손으로 그려 넣고, 내용을 직접 적으면서, 손에 먹물이 마를 새가 없이 등사기를 밀었다. 그러했던 노보도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를 거듭해왔다. 손바닥 크기의 소책자에서부터 신문 크기의 노보에 이르기까지 크기가 다양해졌으며, 단색위주에서 곳곳에 컬러가 들어갔다.

시선을 끌어들이는 요소는 다양해졌지만 예전의 아련함은 사라진 듯 하다. 노보로서 노동자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아내는 노보들이 줄고 있다는 것이 관계자의 말이다. 현장 노동자들이 직접 쓰던 예전의 노보와 달리 집행부의 단위 지침이나 교육의 내용이 위주가 되는 노보들이 점점 늘어 나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집행부의 잘못이라기 보다는 노보가 전문화되어 감에 따른 결과라 볼 수 있다. 보다 심층적인 내용을 담아내기 위해 현장 노동자의 글을 싣기보다는 집행부의 글을 싣고 전문가의 칼럼을 기고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때문에 가슴으로 읽히던 노보에서 머리로 읽히는 노보로 변모하게 된 것이다.

인터넷이 생활 전반에 뿌리 내리면서 노보도 인터넷 상으로 들어가고 있다. 홈페이지가 노보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대우건설 사무직의 노동자들의 경우 홈페이지를 개설하면서 노보를 폐간하였다. 분명 홈페이지가 각 단위 사업장의 여론을 수렴하거나 신속하게 집행부의 공지 사항을 전달하는 기능은 뛰어나다. 하지만 근로 시간 틈틈히 읽을 수 있는 노보의 빠른 접근성 등의 모든 기능을 홈페이지가 다하기에는 부족한 점도 많다.

또한 모든 노조에서 홈페이지를 개설 할 수는 없다. 사무직 노동자들에 비해 현장 노동자들은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을 뿐더러 컴퓨터를 만질 시간조차 낼 수 없는 경우가 많다. 홈페이지의 비중이 커지고 있는 것은 대외 홍보용의 의도가 크다. 이제 노동자들도 자신들만의 힘으로 상황을 바꿔 나가겠다는 생각에서 여론화를 통해 바꿔 나가려 한다. 또한 연대의 중요성이 커짐에 따라 인터넷 교류가 활발해진 것도 노조 홈페이지 증가의 한 원인이라 할 수 있다.

노보는 노동 운동과 떼어놓을 수 없는 노동자들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유일한 현장 언론이다. 비록 현장 노동자의 직접 참여가 힘든 상황이라고는 하지만 노동자들의 삶을 위해 존재하는 이상 그 의의는 빛을 잃지 않을 것이다.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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