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리가 일정과 정보만을 단순히 필기해 놓는 단순한 수첩이나 연습장의 개념을 넘어섰다. 2007년용으로 출시된 다이어리만도 250여 종, 그 수많은 다이어리들의 탄생 속에는 나날이 다양화되어가는 사람들의 욕구가 반영된다. 그 속지 속에 속속들이 펼쳐지는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문화의 트렌드, 그리고 그 속에 담겨진 다이어리의 실체를 발견할 수 있다!

다이어리가 연필이나 펜의 심지를 휘갈겨 봄직한 종이꾸러미정도에 지나지 않던 시대는 지나갔다. 현재의 다이어리는 기록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계획과 관리에 그 무게를 두고 있는 것이다. ‘제 4세대 시간 관리 도구’라고 일컬어지는 ‘프랭클린 플래너’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 다이어리는 시간을 분절화하여 하루 일과에서 무엇을 우선순위로 정하면 좋을지, 중요도는 어느 정도인지를 평가하고 목표를 설정하는 것을 도와주고 평가할 수 있도록 만든 다이어리이다.

이는 프랭클린의 “Time is money”에 관련된 일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에게서 시간은 손에 잡히는 1달러의 경제적 가치처럼 환산될 수 있다. 결국 시간들을 모아놓은 그의 삶 또한 한 손에 쥐어진 달러들과 다르지 않다. 그의 경제적 마인드로 점철된 프랭클린 다이어리에서 암묵적으로 말하는 바와 같이, 삶은 쪼개고 분류시켜서 목표를 설정한대로 살 수 있을 만큼 통제 가능한 것인가?

이는 인간을 둘러싼 모든 세계를 단순화시켜 이해하고, 조절 가능한 것으로 여긴 서구적 발상에서 근거한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서양인들은 세계를 조금만 관찰하면 한 손에 넣고 주무를 수 있을 만큼 단순하게 파악했다. 세계관이 그러하니, 하물며 시간에 대한 태도는 두말할 것도 없다. 스스로의 의지로 통제되고 관리될 수 있으며, 분석하고 파악 가능한 것, 그것이 그들의 시간의 연속체, 바로 한 손 위에 존재하는 삶이다.

그러한 인식의 결정체가 현대의 ‘다이어리’가 운영되는 밑바탕이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주목해볼만 한 점은, 다이어리가 그의 주인이 어떠한 욕구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천차만별의 개성을 띠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나만의 욕구와 희망이 반영된 새로운 시간 체계, 삶의 계획이 수립되면서 사람들의 일상은 독특하게 재창조되기 시작한다.

어떤 다이어리든지 그 속에는 삶과 시간에 바라는 소망들이 한 가득 담겨 있다. 비록 그 속에 하얀 여백으로 듬성듬성한 자신의 공백상태를 발견하더라도 놀라지는 말도록. 그 하얀 다이어리의 속살에 철자로 적기엔 너무나 여유로운 젊음이 깃들어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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