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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쯤인 것 같다. 가슴 한 편이 아려오는 시기가. 가을이 깊어 가면 오롯이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 가을 하늘처럼 맑은 얼굴에 바람처럼 신비로운 미소의 풀잎 향기를 지닌 그녀가 내 앞에 나타났다 홀연히 사라진 일.

한 때는 캠퍼스 전체를 핑크빛으로 물들였던 그 만남은, 어느 순간 삐거덕거리기 시작했는데, 그 순간이 어느 시점인지 당시는 전혀 몰랐다가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나 알 수 있었다.

그 때 나는 스스로를 말을 절대로 섞고 싶지 않은 ‘놈팡이’로 만들었던 것이다. “나뭇잎들의 빛깔이 참으로 고와요”하면 “그것은 여름철 광합성 작용으로 만들어진 양분들이 줄기나 뿌리로 이동하고, 이 자리를 붉은 색을 띠는 색소가 자리하게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라고 말하고, “노을이 지니 좋네요. 바람도 시원하고”하면 “노을은 태양의 빛이 산란하는 현상이잖아.

오후에는 기온이 떨어지니 대기의 흐름이 바뀌어…”라고 말하는 순간, 쓸쓸해지는 그녀의 얼굴. 그렇게 그녀는 쓸쓸하게 떠났다. 그녀 떠난 자리로 불어오는 쌀쌀한 가을 바람, 뼈 속이 시렸다.

이 무슨 아둔한 짓이냐 말이다. 사랑은 논리 이전에 감수성의 문제이다. 내가 누군가를 믿고 신뢰하고 사랑한다고 했을 때 그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런데 이러한 감수성은 천부적일 수도 있지만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하기도 하다.

역으로 인문학적 소양은 논리로 풀어갈 수 없는 부분에 대해, 그리고 창의적으로 사고할 수 방법을 알려준다. 인문학적 소양은 다른 것이 아니다. 자신의 주변에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 깊이를 갖는 것, 즉 사물을 천천히 살펴보고 그 사물과의 거리를 좁히는 것, 그리고 따뜻한 인간애가 삼투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위한 기초 과정으로 장문의 연애편지 쓰기를 권한다. 그럼으로써 자신의 감정이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는지 또 다른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가늠해 볼 수 있다. 그 다음은? 그것은 당신들의 문제이다. 애인이 있다면, 오늘 저녁 아니 새벽까지 그 혹은 그녀에 대한 감정을 편지지 위에 사각거리며 적어보자. 연서(戀書) 없는 청춘의 가을, 너무 삭막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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