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時)읽어주는 남자



저는 이율배반적입니다. 학생들에게 공부하지 말고 하고 싶은 걸 하라고 하면서도 저는 그렇지 못합니다.

1인당 GNP가 2만 달러에 육박하는 시대에 굶어죽을 일은 절대로 없으니 자신이 정말 원하는 걸 하라고 하면서도 저는 여전히 먹고 사는 일에 골몰합니다.

인간에게 먹고 사는 일은 가장 중요한 일이면서도 종종 가장 슬픈 일이 되기도 합니다. 슬픔은 자신의 힘이나 능력으로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을 때 생기는 감정입니다. 그래서 먹어야 산다는 것은 가장 엄중하면서도 슬픈 일인 것입니다.

세상이 저마다의 욕망으로 출렁대는 거대한 바다처럼 느껴질 때, 저는 절집으로 갑니다. 절에는 무소유의 ‘이미지’가 있습니다. 그래서 웬만해선 책도 안 보려고 합니다.

그냥 방안에 우두커니 앉았다가 옵니다. 그러다가 심심하면 아예 드러누워 절집 마당에서 들려오는 숱한 발걸음의 무게와 이력을 헤아려 봅니다. 그러니 위 시에서처럼 “뭘 가지고 왔냐고 묻”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립니다. 한 소식 들었냐는 뜻이겠지만 그게 쉽게 올 리 없습니다.

낡은 소반 위에 놓인 시인의 마음에는 늙고 병든 자들에 대한 연민도 있지만, “뭘 가지고” 있어야 행복하다고 믿는 세상의 습속을, 깨끗이 외면하는 은근한 배짱이 있습니다. 문득 세상 잡사가 시시해집니다.

김점용/시인, 객원교수

저작권자 © 서울시립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