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단체 민우회가 성폭력 사건에 대한 판결문에서 가해자가 욕정을 못 이겨 범죄를 저지르게 됐다는 식의 표현을 삭제하고 앞으로 욕정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도록 하는 요청을 사법기관 등에 전달했다고 한다. 이에 검찰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왔다. 하지만 사실 ‘욕정’이란 용어 하나에 왜 그렇게 큰 의미를 두느냐”는 반응을 갖는 이들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다.

성범죄는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문제이다. 최근에는 성범죄를 저지르는 연령대가 갈수록 폭이 넓어져 초등학생, 노인이 저지르는 성범죄 소식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반면 성매수·성추행·성폭행 피해자들 중 13세 미만의 수는 2004년 577명에서 2005년 698명, 2006년 774명으로 증가해왔다.

여기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우리나라가 성범죄에 대해 유달리 관대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최근 13세 미만 아동 성매수 혐의로 판결이 확정된 62명의 사례를 조사한 결과, 절반 가까이가 집행유예 판결(46.8%)를 받았을 뿐이고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8명에 불과했다는 한 조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성교육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과 관심으로 성에 대한 지식과 규범 의식이 아무리 높아졌다 하지만, 법과 같은 한 사회의 규범이 오히려 이에 역행해 집행된다면 아무 소용도 없을 것이다. 어린 아이를 상대로 평생 지울 수 없는 고통과 아픔을 저지른 이들이 이치에 맞는 처벌을 십중팔구 피해간다면, 과연 범죄를 저지른 이나 사건을 지켜보는 이들 중 성범죄의 심각함과 법의 엄격함을 진심으로 느낄 수 있는 수는 과연 몇이나 될까.

이러한 납득할 수 없는 수준의 처벌을 내린 판결문 속에 `도저히 이길 수 없는 본성’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내용이 항상 포함돼 있었다는 사실은 그러한 판결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성 관념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기에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이번 민우회의 주장이 성범죄에 대한 비정상적인 이해심과 관대함이 이 땅에서 사라지도록 하는 강력한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저작권자 © 서울시립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