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의 역사

미술관에서 사진 전시회를 보는 것은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하지만 사진이 미술관에 걸리기까지, 즉 사진이 예술로 인정받기까지는 꽤나 긴 논쟁이 있어왔다. 1839년 사진이 발명되었을 당시 예술계에서는 사진을 독립적인 예술로 인정하지 않았다.

사진의 예술성을 비판한 대표적인 인물로는 보들레르를 꼽을 수 있다. 그는 1859년 『현대의 대중과 사진』이라는 글에서 “사진은 충실하게 사물을 기록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예술이라 할 수는 없다. 그 기능은 화가를 위한 심부름꾼으로서 인정받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이 예술은 아닌 것”이라며 사진의 예술성을 부정했다.

이러한 비판은 대부분 사진의 특성에 기인하고 있다. 화가가 직접 손으로 그리는 회화와는 달리 사진은 카메라라는 기계를 빌려 셔터만 누르면 되기 때문이었다. 또한 회화 그림은 그 하나로 고유한 완결성을 가졌던 것과 달리 사진은 무한한 복제가 가능했다. 당시 예술가들은 사진은 사실의 재현만 가능할 뿐 그 이상의 예술성을 지니지는 못한다고 생각했다.

반면 이런 비판에 대해 사진을 예술로 끌어올리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1857년 오스카 레일랜더는 「인생의 두 갈래 길」이라는 작품을 통해 사진의 기계적인 속성을 극복했다. 그는 30여장의 음화들을 짜 맞추어 이 작품을 만들어냈다. 즉 그는 여러 개의 사진을 몽타주 기법으로 조합함으로써 사진의 예술성을 증명했다. 레일랜더와 함께 합성사진을 만들어내던 헨리 로빈슨은 사진의 고급예술운동(high art movement)을 펼치기도 했다. 그들은 사진이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예술일 수도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하지만 이같은 사진의 회화성은 사진을 그 본질에서 멀어지게 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후, 헨리 에머슨, 알프레드 스티글리츠 등을 거치면서 사진은 독립적인 예술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들이 주장했던 스트레이트 포토(straight photo)는 예술의 한 분야로써 사진계를 주도했다. 그는 철저한 사실주의만이 사진 예술의 기본 미학이라고 주장했다.

이제는 사진이 예술의 한 분야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보들레르의 말처럼 사진이 단순히 현실의 재현만으로 예술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작가의 시선과 철학이 담길 때에만 사진은 예술이라는 이름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서울시립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