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책 한 권_『성배와 칼』, 리안 아이슬러

‘오직 죽은 자 만이 전쟁의 끝을 볼 수 있다’고 플라톤이 말했듯, 전쟁은 늘 인류와 함께 해 왔다. 그러나 역사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사건처럼 여겨지는 전쟁과 폭력을 피하면서도 발전한 문화를 꽃 피운 시대가 있었다면?

미국의 여성운동가이자 문화인류학자인 리안 아이슬러는 몽상처럼 들리는 이러한 이야기를 방대한 고고학적 문헌과 자료를 통하여 우리에게 펼쳐내 보여주려 한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오른 이 책, 『성배와 칼』이다. 저자는 ‘성배(聖杯)’로 상징되는, 생명을 존중하던 여성중심의 평화로운 사회가 어떻게 ‘칼’로 상징되는 정복과 폭력의 남성 중심적 사회로 대체되어가는지, 신석기 시대부터 크레타 문명을 거쳐 근현대까지 그 과정을 추적한다.

고도로 발달된 ‘성배의 문화’는 ‘칼의 문화’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되고, 짓밟혀 그 기능을 상실했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댄 브라운은 소설 『다빈치 코드』를 쓰면서 바로 이 책을 참조했다). 그러나 이 책은 남성 대 여성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적 구도의 나열에 그치지 않는다. 지금도 끊임없이 벌어지는 차별, 억압, 폭력에서 벗어나 진정한 해방과 발전의 길로 나아가는 길은, ‘칼의 문화’에서 비롯된 낡은 틀을 버리고 진정한 남녀유대의 시대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라는 것이 이 책의 결론이다.

“메가톤급 핵탄두로 수백만 배 강화된 칼의 치명적인 힘이 인류의 모든 문화를 끝장내겠다고 위협하는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평화와 공존의 정신인 성배의 문화이다. 우리는 지금 이것을 받아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의 갈림길에 서 있다.” 아이슬러의 이러한 호소는 성차를 떠나 보편적 인류의 입장에서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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