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도도한 자태로 서 있다. 옆에서는 나비가 날아다니고, 그 건너편에는 수수한 차림의 여자가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다. 서점가에 놓여 있는 책 표지들의 풍경이다.

어느 순간부터 책의 표지는 단순히 제목을 보여주는 이름표가 아니라, 수많은 책들 중에서 자신을 어필하는 얼굴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사람들도 단순히 내용만 좋은 책보다 표지와 디자인이 예쁜 책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책은 왜 화려한 옷을 입기 시작한 것일까.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사회과학 서적, 자기계발서, 소설 등 종류에 상관없이 모든 책들이 화려해지고 있다. 영화를 비롯한 광고 포스터에서나 보일법한 이미지들을 이제 책 표지에서도 볼 수 있다. 사진이나 이미지를 각색한, 혹은 책의 인물 중 하나를 그려낸 일러스트가 표지에 그려져 있는 것은 이제 자연스러운 일이다. 비교적 간단한 타이포그래피만 활용하던 과거와는 무척 대조적이다.

책 표지가 화려해지는 것은 디자인 산업이 발달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세계는 바야흐로 디자인의 시대다. 사람들은 상품을 사도 단순히 기능적인 측면만 고려하기보다는 그것의 디자인까지도 고려한다. 소위 디자인을 소비하는 것이다.

책도 비슷한 맥락에 놓여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제 내용도 좋고 디자인도 좋은 책들을 원한다. 내용이 좋아도 책 표지가 밋밋하면 일단 그 책은 뒤로 밀려난다. 표지는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끌기 위해 보다 화려해지고 있는 것이다.



표지는 기본적으로 책의 내용을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편집자와 디자이너가 상의를 하면서 어떤 이미지가 어울리는지, 제목과 저자의 이름과 이미지의 배치는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을 결정한다. 일러스트를 그릴 것인지 사진을 이용할 것인지, 일러스트를 그린다면 색감은 어떻게 할지 등은 독자층을 고려해서 결정된다. ‘열린 책들’의 편집자 김호주씨는 “현재 20~30대 여성들이 소설의 독자층을 이루고 있다. 표지는 독자들을 고려해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아무래도 가볍고 세련된 분위기의 표지가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표지는 섬세해지고 있는 추세다. 디자이너들은 이미지뿐만 아니라 폰트도 골라야 한다. 컴퓨터에서 제공되는 일반적인 폰트는 밋밋하다는 평을 많이 듣기 때문이다. 제목을 어떤 폰트로 쓸 것인지, 크기는 어느 정도로 할 것인지 등이 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폰트도 책 표지에서는 하나의 디자인 요인으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김호주씨는 “손글씨체가 요즘의 트렌드”라고 한다. 컴퓨터로 작업한 폰트를 직접 손으로 수정을 하거나 애초에 손으로 쓴 폰트로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인쇄 기술의 발달로 가능해진 표지도 이제는 서점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파피용』의 표지 나비처럼 박을 찍어내고, 김연수의 소설 『밤은 노래한다』처럼 띠지를 표지의 일부분으로 활용된다.



디자인도 번역 된다
원서를 번역한 책의 경우에는 표지 디자인이 어떻게 결정될까. 보통 원서의 디자인을 차용하고 그 느낌을 살리는 방향으로 한다. 하지만 종종 표지가 아예 바뀌는 경우도 있는데, 로렌 와이스버거의 소설『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대표적인 예로 꼽을 수 있다.

원서는 구두 사진이 크게 들어간 반면 한국판에는 구두 대신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다. 외국에서는 표지에 사진이나 이미지를 많이 쓰는 반면, 우리나라는 그런 경향이 적다. 비교적 일러스트를 많이 쓰는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제목이 표지에서 가장 크게 찍히는 반면, 외국은 제목보다 작가 이름을 가장 크게 찍는 경향이 짙다. 번역서의 경우 디자인도 우리나라 느낌에 맞추어서 받아들인다.



소설 표지의 발자취
90년대에 우리나라 소설에서 주로 사용되던 디자인은 타이포그래피였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지금과 같은 일러스트는 없다. 별다른 그림이 없는 단순한 배경에 글자들이 배열되어 있는 것이 90년대 소설 표지의 전부였다. 글자의 느낌이 주는 타이포그래피만의 독특한 매력이 있긴 하지만 지금의 표지와는 다분히 거리가 멀다.

소설은 표지가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같은 소설가의 90년대와 2000년대 작품을 표지로만 보았을 때 드는 느낌은 확연히 구분된다. 내용이 다르다는 것도 이유가 있겠지만, 근래의 소설 표지는 만화책만큼이나 화려하다. 20~30대의 죽어가는 독서문화가 소설의 표지도 화려하게 바꾸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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