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취재 | 스웨덴_ ③ 주거문화편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주거형태는 아파트이다. 위성사진으로 보면 성냥갑만한 아파트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아파트가 처음 건축되던 시기에 어떻게 아파트에 살겠냐던 사람들은 지금은 아파트 입주를 위해 청약에 열을 올리고 있다.

유럽을 돌아보면서 놀란 것은 우리나라에서 어딜가나 흔히 볼 수 있는 아파트와 비슷한 높은 건축물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프랑크푸르트 같은 대도시에는 높은 건물이 많지만, 대부분의 지역은 5층 이상의 건물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는 유럽의 옛 도시를 보전하려는 생각과도 무관하지 않지만, 이것보다 더욱 연관된 것은 우리나라와 유럽의 인구밀도이다. 인구비율이 불균형적인 우리나라의 경우 한 곳에 많은 사람이 살 수 있는 아파트가 널리 퍼진 반면, 우리보다 적은 인구밀도를 가진 유럽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작은 단층집을 지어 살아도 충분한 것이다.

유럽의 주거형태는 우리로 치자면 3~4층 정도의 빌라와 비슷하다. 하지만 건물 가득 살림집이 모여 사는 우리와 달리 유럽의 집들은 그리 모여 있지 않다. 대부분 벽돌로 만들어져 있고, 폭은 좁았다. 1층당 16평 정도고, 폭이 좁은 대신 한 가족이 2층 이상을 사용하는 게 대부분이라고 한다.

유럽의 주거문화를 살피며 가장 부러웠던 것은 공공주택 부문이었다. 우리나라의 공공주택은 대부분 빈민촌과 같은 보기 싫은 성냥갑만한 아파트로 이루어져 있다. 때문에 공공주택이 들어오면 집값이 떨어진다고 공공주택의 건설을 막기 위해 주변 지역 주민들이 반대 시위를 하기 일쑤이다. 요즘은 그나마 공공주택에 대한 인식이 많이 나아져 있긴 하지만 여전히 주변지역 주민들의 공공주택 거주자에 대한 인식은 좋지 않다.

유럽은 그렇지 않다. 유럽도 자본주의 사회니만큼 잘 사는 사람들이 사는 지역과 못사는 사람들이 사는 지역이 나누어져있긴 하다. 잘 사는 사람들이 사는 지역은 더 전망도 좋고 쾌적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두 건물 모두 한눈에 보기에 아름답다. 또한 잘 사는 집 아이들과 못 사는 집 아이들을 가르는 장벽 같은 것도 당연히 없다. 이는 노동자도 아름다운 집에서 살 권리가 있다는 유럽 사람들의 생각 때문이란다.

노동자에 대한 주거의 배려는 정권에 따라 조금의 변화는 있지만 ‘노동자에게 살만한 집을 제공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는 사회적 태도에서 나온다. 100년 동안 직접 시민혁명을 위해 일어선 피 값의 결과물인 것이다. 이러한 노동에 대한 존중은 우리나라의 사정을 생각해 볼 때 부러워할 수밖에 없다. 자신이 편히 몸 누일 집 한 채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인 우리나라에서 싼 가격에 아름다운 집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거의 꿈과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평생 뼛골 빠지게 일해도 남는 건 아파트 한 채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유럽은 싼 가격에 자신의 몸을 누일 곳을 구할 수 있다. 사실 이 좁은 땅에서 유럽과 같은 저층의 주택을 바라는 것은 아마 나무에서 물고기를 잡으려는 격이 될 수도 있겠지만, 국가에서 싸게 집을 지어 돈이 없는 사람들에게 분배하는 것은 충분히 배울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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