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론가 변성찬의 영화 속 가족

최근 한국영화에서 나타나는 특징 중의 하나는, ‘가족영화’가 뚜렷한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속에는 두 가지 경향이 공존한다. 다양한 방식으로 ‘아버지의 귀환’을 호소하는 영화(소위 ‘아버지 영화’)와 가부장제를 벗어나 있거나 벗어나고자 하는 수상하고 낯선 가족의 영화(소위 ‘대안가족’ 영화). 전자의 영화들은 2007년 봇물처럼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파란 자전거>, <우아한 세계>, <이대근, 이댁은>, <아들>, <날아라 허동구>, <눈부신 날에>, <마이 파더>, <브라보 마이 라이프>, <즐거운 인생> 등이 그것이다(물론, 2006년의 <플라이 대디>도 이 계보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대개 30대 중후반의 젊은 감독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는 후자의 영화들은, 거의 해마다 한편씩 만들어지면서 새로운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바람난 가족>(2003), <귀여워>(2004), <다섯은 너무 많아>(2005), <가족의 탄생>(2006), <좋지 아니한가(家)>(2007) 등이 그것이다.

가족은 한국영화의 중요한 화두 중의 하나가 되었고, 그 화두를 둘러싸고 두 개의 대립되는 목소리가 경합을 벌이고 있다. 한국영화에서 가족은 성차(gender)와 서로 다른 세대적 감수성이 갈등하고 충돌하는 무대가 되었다. 그 갈등과 충돌의 중심에는 ‘아버지의 존재’ 또는 ‘아버지의 자리’에 대한 치열한 질문이 자리 잡고 있다.

하나의 질문에 대한 서로 다른 두 가지 대답, 가부장적 가족의 위기에 대한 서로 다른 두 가지 진단과 처방. IMF 이후 본격화된, 그리고 한미 FTA로 더욱 가속화되고 있는 세계화라는 이름의 자본주의적 합리화는, 많은 가족과 아버지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애타게 ‘아버지의 귀환’을 이야기하고 있는 ‘아버지 영화’는, 사실 역설적이게도 그 ‘귀환’의 어려움 또는 불가능성을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대개의 경우, 그 화법과 어조는 무겁고 쓸쓸하다. 소위 ‘대안 가족’ 영화에서 등장하는 불안해 보이는 가족의 형상은 무너져 가고 있는 가부장제에 대한 징후적인 진단이자 새로운 가족윤리에 대한 질문 또는 실험이다. 대개의 경우, 그 화법과 어조는 가볍고 경쾌하다. 두 흐름의 영화 모두에 판타지가 등장하고 있지만, 그것은 영화적 판타지의 다른 용법과 기능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욕망의 퇴행적 충족인가, 아니면 현실에 대한 관습적 재현(또는 재현의 관습)으로부터의 탈주인가? 이것은 곧 영화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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