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읽어주는 남자


○○씨에게. 시 한 편을 마주하고, 문득 당신을 떠올린 건 무슨 이유였을까요. 아마도 당신의 커다란 눈 때문일 겁니다. 시인이 “덜컥” 눈물을 대하듯, 당신의 눈에선 이따금 슬픔이 비치곤 합니다. 그 슬픔은 당신의 입가에 머무는 미소와는 무관한 듯 보이기도 하지요.

문태준이 시의 새로운 화두로 ‘그늘’을 삼고 있네요. 일찍이 시의 몇몇 대가들이 강조했던 ‘그늘’이란 개념을 그가 다시 꺼낸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만히 그늘의 형상을 떠올려보세요. 그 가까이에는 빛도 있지만, 다른 한쪽에는 어둠이 있지요. 슬픔과 미소라는 상반된 표정이 담겨있는 당신의 얼굴처럼 말이죠.

아마도 ‘그늘’은 그런 자리가 아닐까요. 빛을 향할 수도, 어둠을 향할 수도 있는 경계 말이에요. 그래서 ‘눈물’도 그 자리에서는 점점 물렁물렁해질 수 있죠. 그런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어쩌면 눈물은 어둠이 아닌 요원한 빛이 만들어낸 것일 수도 있다는 점이에요.

다분히 모순된 말처럼 들리겠지만, 어느 고승이 ‘무소유’를 통해 더 큰 만족을 ‘소유’했던 걸 우리는 알고 있잖아요. 이 시에서 시인이 ‘더 좋은 내일’에 대해 끝내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도 비슷한 이유겠지요.

저는 당신의 눈에 이따금 비치는 슬픔에 대해 걱정하지 않아요. 당신의 눈도, 그늘도 슬픔이 머물다 가는 자리일 테니까요. 다만, 부디 행복하시길.

박성필(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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