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읽어주는 남자



칠흑 같은 밤, 달이 떠올라있다. 그러나 그뿐이다. 어둠은 결코 소멸되지 않을 것이다. 누구도 달빛 한 줄기가 세상을 환히 밝혀줄 거라는 미망에 빠지지 않는다. 그 어둠을 빚어낸 자들은 다름 아닌 ‘우리’이기 때문이다.

우리? 단 한 번도 같은 시선을 가져본 적이 없기에 ‘우리’라는 대명사도 미망에 불과하다. ‘눈 먼 새들’은 “일제히 달을 바라보”고 있지만, 내가 바라보는 것은 ‘달’이 아닌 그 달을 바라보는 ‘눈 먼 새들’이다. 이러한 시선의 분열은 나와 그들 사이의 심리적 거리를 보여준다.

단 한 권의 시집도 세상에 내놓은 적 없는, 불과 스물 두 살인 젊은 시인에게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그가 창조하는 거리감 때문이다. 그것은 ‘잠시 다녀간 시선’조차 지우지 못하는 여리디 여린 감성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이제 그는 그 거리를 좁히려 한다. 결코 쉽지만은 않을 새로운 삶을 나서며, 그는 눈먼 새들의 욕망을 범했던 자기의 몸을 ‘소란한 이 곳’으로 되돌리고자 한다. 그러한 방법은 제 스스로 또 다시 많은 눈물을 만들어야하는, 아니 시(詩)로 살아야하는 그 가혹한 운명을 예고하는 것일지 모른다.

그리하여 “기억이라도 하나 엎지르고 떠나”겠노라 고백하고, 한 걸음 한 걸음 멀어져가는 그의 뒷모습은 일면 당차보이지만 또한 힘겨워 보이는 것이다.

박성필(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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