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론가 변성찬의 영화 속 가족

<가족의 탄생>은 ‘관계의 윤리’에 대한 질문의 새로운 변주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가족의 탄생>은 어떤 한 가족의 탄생기라기보다는, 세 가족들(또는 커플들)의 탄생기이다. 그 커플들은 하나같이 정상적인 가부장적 가족제도에서 밖으로 밀려난 자들 사이에서 형성된다. 무엇보다도 그들에게는 제대로 된 아버지 또는 남편이 없다.

경계 밖으로 수동적으로 밀려난 이들이 서로 관계를 맺고 관계를 증식해 나감으로써 ‘(제도로서의) 가족 외부로서의 가족’을 형성해 가는 자들(다시 말해서 능동적으로 벗어나는 자들)로 변신해 가는 과정, 정확히 이것이 ‘탄생’의 진정한 의미일 것이다.

먼저 미라-무신 커플. 미라는 형철의 누나이고, 무신은 형철의 나이 많은 애인(또는 부인)이다. 이 어색하고 불안정한 동거를 한 가족-커플로 묶어주는 것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채현이다. 채현은 무신의 ‘전남편의 전부인의 딸’이다.

즉 이 세 여자는 혈연적으로 아무 관계도 없는 사이다. 그리고 선경-경석 커플. 둘은 ‘씨 다른 남매’이다. 선경은 엄마의 삶을 이해하지도 인정하지도 못했지만, 엄마가 죽은 후 경석을 동생으로 받아들이고 자식으로 키운다. 마지막으로 채현-경석 커플.

앞선 두 불완전한 커플의 계열은, 이 둘의 만남을 통해 서로 합류하게 되는데, 여기에 새로운 ‘가족의 탄생’의 진짜 모험, 즉 갈등과 극복의 드라마가 있다. 채현과 경석은 모두 ‘아버지 없는 자식’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그것에 대한 태도는 전혀 다르다. 소년 경석은 그 ‘부재’에 매달린다. 그는 자신이 정상적인 아버지가 될 수 있기를, 즉 밀려난 그 자리로 되돌아갈 수 있기를 욕망한다. 그는 결혼하지 않고 연애만 하는 누나 선경을 이해하지 못하며, 채현의 ‘헤픈’ 태도 때문에 괴로워한다.

소녀 채현은 ‘아버지의 부재’로부터 자유로우며, 가족의 외부에서 새로운 관계를 증식시켜나간다(이것이 ‘헤픔’의 진정한 의미이다). 반응적인 경석과 능동적인 채현. 채현의 도발적인(근본적으로 윤리적인) 질문(“그런데...헤픈 게 나쁜 거야?”)을 경석이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그 커플(더 나아가 전체 커플들)의 탄생 여부가 달려 있을 것이다.

이 새로운 ‘가족 탄생’의 진정한 산파인 ‘이상한 소녀’의 형상은 새로운 흐름의 가족영화 곳곳에서 등장하고 있다. 그녀들은 윤리적 질문의 미학적 형상이다. 말하자면 그녀들은 ‘백치(白痴)’ 또는 ‘시뮬라크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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