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의 역사

1960년대 한국은 격동의 시기였다. 당시 경제적으로는 근대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지만, 4·19 혁명과 5·16 군사 정변을 통해 드러난 민주주의의 현주소는 이데올로기 대립을 비롯한 많은 과제를 한국 사회에 던져주었다.

이러한 상황은 문학에도 영향을 주었다. 그 대표적인 움직임이 참여 문학과 순수 문학의 논쟁이었다. 문학이 지니는 사회 비판적 기능을 적극적으로 주장하자는 측과 문학은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로워야 한다는 측의 대립이 일어났던 것이다. 흔히 전자를 참여문학이라고 부르고, 후자를 순수문학이라고 부른다.

참여문학가들은 작가나 문학이 현실과 역사에 대한 비판적 의식과 참여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 했다. 특히 홍사중은 「작가와 현실」이라는 글에서 “작가란 ‘나’와 ‘너’가 아울러 살고 있는 이 현실을 보다 더 밝게 만들기 위한 힘찬 행진에 한몫 끼어야 한다”면서 작가의 사회 참여를 주장했다. 순수문학가들은 그들의 그런 주장이 문학을 정치적 도구로 전락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또한 순수문학이 한국문학의 전통적 맥을 잇는 문학이라는 순수문학 옹호론을 펼치기도 했다.

이 논쟁은 60년대 후반을 지나면서 이어령과 김수영 간의 불온시 논쟁으로 이어졌다. 이어령은 조선일보에 게재한 「누가 그 조종을 울리겠는가!」라는 글에서 참여문학가들을 “오도된 사회 참여론자” 라고 말하면서 참여문학은 문학을 정치활동의 시녀로 전락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다른 글에서도 책상 앞에서만 참여시를 쓰는 시인들은 역사의 전리품을 가로채가는 동물원 사냥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김수영 시인은 「실험적인 문학과 정치의 자유」란 글을 통해 “모든 전위문학은 불온한 것이며 대중의 검열자보다도 더욱 두려운 문화 파괴적 검열자는 획일주의적인 문화당국”이라는 반론을 제기했다.

하지만 이 논쟁은 김수영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결말을 맺지 못한 채 아직까지 명쾌한 승리가 없는 논쟁으로 남아있게 되었다. 70년대를 넘어 지금까지 이 논쟁의 맥을 잇는 논쟁들이 다양하게 논의되고 있다.

참여문학과 순수문학의 논쟁은 해묵은 것이기도 하지만 이 논쟁은 1960년대 한국문단에서 문학의 사회적 기능과 작가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출구를 모색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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